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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두려웠던 하루가 지난다. 어디로부터 오는 두려움인지 알 수 없어서 눈 감았는데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니 하루가 지나가나 보다. 늘릴 수도 줄일 수도 건너뛸 수도 없는 시간이기에 째깍째깍 넘어가는 초침이 쌓이다 보면 해가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머리 위로 큰 유형의 그림을 그리나 보다. 그렇게 아무 탈 없이 지나가는하루.

고맙다 스쳐간 바람아, 매화 꽃잎처럼 날리는 눈송이야. 노을진 하늘 끝에 걸린 거친 숨들아 이젠 편안히 누워도 돼. 꼭 쥐은 손 풀어줘도 돼. 긴장의 힘을 빼고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도 돼. 낮은 낮에게, 밤은 밤에게 서로의 매듭을 풀고 길게 이어져 첼로의 중후한 음색으로 노래 불러도 돼. 한밤이 지나면 당신 손에서 새벽이 오고 당신의 손으로 빚은 토기가 숨을 토하는 아침이 올 테니까.

어려운 시간 내내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고뇌와 절망의 삶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노인은 용감했고,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작은 나무배를 타고 자신의 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를 잡기 위한 삼일 낮, 삼일 밤의 끈질긴 사투는 우리가 걸어왔고 또 걸어야 할 인생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청새치를 배 가장자리에 묶고 돌아오는 길. 상어떼의 공격에 온몸으로 저항해 보지만 깊은 상처만 입고 앙상한 뼈만 달고 돌아온 집. 누가 물어봐도 실패와 절망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고뇌 속에 돌아온 노인의 곁엔 한 소년이 있었다. 혼자 떠난 고기잡이 배에서 늘 그리웠고 그 빈자리가 너무도 컸던 그 소년. 결국 인생은 혼자이고 외롭고 고독한, 쓸쓸한 생이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를 살게 해준 건 그 아이야." 노인은 그 소년에게 기대고 고통의 깊은 수렁에서 일어나 소년과 함께 행복해진다. 노인을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 소년이라는 존재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불현듯 밀려오는 두려움, 좌절, 고독 속에서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내는 당신을 만날 때, 비로소 새벽이 오는 의미와 오늘도 살아야 하는 존재의 가치가 느껴질 것이다. 당신의 손끝으로 새롭게 빚어낸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노인에게 소년이라는 존재가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행복의 동력이 되듯이 말이다.



바람은 내일도 불 거야 / 신호철

너에게 찬바람이 불면
나에게도 찬바람이 분다
영혼은 피폐해 가고
육신은 피곤해 쓰러졌다
도적 같은 밤이 오면
욕심덩어리 무게를 더하고
무너져 내리는 어깨가 아프다
오지 않는 새벽
나를 떼어놓는 밤
낯 설은 나를 어둠에 던지고
여전히 홀로 앉은 나

너에게 찬바람이 불면
나에게도 찬바람이 분다
누군가 속삭인다
바람은 내일도 불 거야
흩어지는 널 데려올 거야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질 거야
새벽은 당신의 손에서 왔고
어둠은 안개처럼 걷히고
당신의 성품으로 빚어진
토기 한 점 깊이 숨쉬고 있다(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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