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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살아 간다는 것에 대하여

신호철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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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10 13:55

20년 전 겨울 고운 쌀가루처럼 눈발이 날리던 날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예정에도 없던 갑작스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미리 예약된 호텔도 없었고 준비한 옷가지도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통해서인지 아내와 난 훌쩍 시카고를 벗어나고 있었다. Windy City 시카고의 겨울 날씨는 늘 쓸쓸했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왔다. 희끗희끗 차창을 때리는 눈발을 가르며 3시간반을 달려 Wisconsin Door County에 도착했다. 꼭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여러 개의 항구가 밀집한 곳이고, Antique Shop과 Gallery들이 많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점퍼의 깃을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찾아간 호텔은 다행히 비시즌이라 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주변의 갤러리와 Pottery를 찿아 다녔고, 작은 Gift Shop에 들려 Winter Song이란 타이틀의 CD를 샀고 행복했었다. 벽에 붙이는 도자기 한 세트와 오래된 Tea pot 몇 개도 구입했다. 추운 날씨에도 썰렁한 거리를 씩씩하게 확보했던 기억이 난다. 그해 겨울 Kitchen 한쪽 벽을 도자기로 장식 했고, 겨울내내 피아노 연주곡인 Winter Song을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도자기를 볼 때마다 눈발이 날리는 거리에 옷깃을 세우고 걷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고, 천천히 음률을 타다 이내 빠르게 건반 위를 춤추는 Winter Song은 찬 바람을 몰고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이 내 귀에 울리며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20년이 지나 우리는 다시 Door County에 왔다. 흰눈이 바람에 날리던 그때와는 달리 오는 도중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이곳에 왔다. 모든 기억의 촉이 살아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의 푸르름은 여전했고, Sunset Beach의 출렁이는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Sturgeon Bay를 잇는 긴 다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위해 긴 허리를 내어주고, 포구에 정박한 배들 위로 물새들이 줄지어 앉아 깃털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리움으로 깊은 숨을 쉬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고, 그 이어지는 순간들은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불빛들이 긴 꼬리를 내리고 물결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그 불빛들은 살아나 주위의 모든 것들을 일순간에 깨우고 있었다. Winter Song의 낯익은 멜로디가 멀리로부터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흐르고 있었다. 20년 세월을 의연히 버텨낸 항구의 풍경이 희끗한 머리로 벤치에 등을 기댄 우리의 눈에 활동사진처럼 한컷 한컷 보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파도는 말하고 있었다.

그냥 사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기 보이는 풍경과 함께 앉은 사람과, 바람에 기대고 서있는 나무들과, 무늬를 그리며 출렁이는 물과, 높은 하늘과,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고요와, 표현할 수 없는 적막함과, 슬며시 웃음짓게 하는 꽉 찬 행복과, 때론 머리 들 수 없는 슬픔과도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20년 후, 이 벤치에 앉아 맞은편 불빛을 바라볼 수 있을까? 저 긴 다리를 건너갈수 있을까? 그때도 여전히 귓가에 Winter Song 피아노 연주가 내 귀에 들려오고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어서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벅찬 가슴으로 숨쉴 수 있을까? 여기 앉아 강 건너 바라보며 쉬었다 갈수 있을까? 지나치는 상념에 밤은 까맣게 다가오고 건너편 포구의 불빛도 하나 둘 흔들리며 멀어지고 있었다. (시카고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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