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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우아하고 여유롭게

이기희
이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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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10/20 16:13

‘잘 지내죠? 샌디에고는 살기 좋아요?’ 스미스씨가 보낸 문자다. 내가 회항한 걸 모르는 눈치다. 바리바리 싣고 이사 갔다 돌아왔다고 하기 쪽 팔려서 문자를 씹을까 하다가 웬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기 마련, 언젠가는 들통 날 일이라서 ‘오하이오로 돌아왔어요.’라고 답신을 보냈다. 초고속 빛의 속도로 전화가 온다. 앞뒤좌우 이유불문 생략하고 ‘웰컴 백’ 연발하며 쌍수 들고 환영하는 눈치다.

이웃 동네에 사는 스미스씨는 윈드화랑 건물 팔고 이사 갈 준비할 때 작은 화랑을 열겠다며 액자제작에 관한 장비와 진열장 및 트럭을 사간 사람이다. 혹시나 도로아미타로 환불 요청하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는데 공사가 잘 진척 돼서 곧 오픈한다며 흥분 된 목소리다. 스미스씨 나이는 73세. 젊어서부터 부동산 중개인하며 건축회사에서 일했는데 아직도 차고문 판매 직원으로 일한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오래된 상가 건물을 구입했는데 작은 화랑 겸 선물센터를 운영하는 게 꿈이다. 나이도 들고 살만 한데 왠 고생이냐며 주변에서 말리지만 내일 죽더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 꿈을 품고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나이 들면서 주변을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을 눈여겨 본다. ‘저 사람처럼 안 돼야지.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상큼하게 걸어야지. 잔소리 안 늘어놓고 쿨 하고 멋진 어른 되야지’ 다짐한다. 빛나는 은발에 몸가짐이 우아한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잘 늙어가야지 생각한다.

요즘 참 편하게 산다. 계획대로 내년 봄에 신축하는 화랑을 오픈 할 때까지 온라인과 홈 갤러리를 운영하니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처럼 보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고 텃밭에 채소도 가꾸니 여유로움이 생긴다. 리사와 맛난 요리도 같이 해먹고 앞뜰에 나가 목이 긴 코스모스가 아직 살아있나 살펴보고 싱싱하게 잘 읽은 토마토 따서 누굴 갖다 주나 궁리한다. 사는 게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 내가 지금까지 추구한 것들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들 이란 걸 알게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후회되면 남은 시간은 후회하지 않게 살기. 내게 맡겨진 무거운 등짐 내려놓고 맡겨진 역할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기.

수용(Acceptance)하면 모든 것이 감사(Gratitude)해진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는 게 가벼워진다. 나이 들어 후회하는 것 중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은 것.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포함돼 있다.

누구의 삶도 흉내내지 않는 인생은 정직하다. 힘들어도 빌붙어 구걸하지 않는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은 벅차지만 풀잎 같은 희망으로 생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너에게 끌려, 지나가는 길 흔들리곤 한다/ 곱디고운 너의 모습/ 내 가슴에 가득히 배어들어(중략)/ 아, 이 이승에 하고많은 꽃들이 있지만/ 그저 너에게 끌려, 황홀한 이 가슴(중략)/ 늦은 가을 저녁 이 노을에/ 너에게 끌려, 너에게 끌려,/ 지나가는 먼 길, 되돌아보고 되돌아보곤 한다’ -조병화의 ‘작은 들꽃, 3’ 중에서

꿈은 늙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더 절실해진다. 넓어지고 깊어지면 품을 일이 많아진다. 청춘의 격렬한 진동과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굉음이 사라진 광야에서 비비댈 부드러운 언덕을 바라본다. 우아하고 부드럽게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사랑은 멀리 떠났어도 가을 저녁이면 그대는 작은 들꽃으로 내 곁에 있다. (Q7 Fine Art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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