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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짧고 굵게

신호철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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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10/26 17:29

그는 대학 2학년 여름 하늘나라로 갔다.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아무 말없이 총총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서울사대에 갓 입학한 꿈 많고 성실한 친구였다. 우리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그의 집은 어른 키보다 높은 담장이 둘러졌고 두쪽으로 된 철문이 떡 버티고 있었다. 담 안쪽으로 나무들이 촘촘히 심겨져 그 가지와 잎사귀들로 집 안채가 보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우리의 인연은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상도유치원 1회 졸업사진엔 보타이를 하고, 하이칼라로 머리를 빗어 넘긴 그의 모습이 또렸이 보인다. 그의 이름은 한상수, 이상하게도 그의 여동생 한상녀도 둥굴고 큰 눈을 뜨고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일하게 남매가 같이 유치원을 다녔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난 그들을 잊고 있었다. 오래 전 어버지의 해외 파견으로 온 식구가 외국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13년이 지난 어느 주일날 아침 광고시간에 놀랍게도 남매는 내 앞에 멋진 청년이 되어 서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청년부에 등록을 하였고 동생은 반주자로 오게 되었다. 우린 지난 오랜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도 소식이 없으면 우린 늦게라도 연락해 만나곤 했다. 나는 미술을, 그는 교육을 전공해 어쩌면 공통분모가 없을 듯 했지만 우린 긴 공백을 끊임없이 메꿔 나갔다. 몇해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친척에게 맡겼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초중고 시절을 건너뛰어 만난 그였지만 그의 성실함,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내면의 매력에 빠져있었다. 그는 늘 시간을 아껴가며 사랑을 표현하는 청년이었다.

그에게 한밤중 전화가 왔다. 지금 배고파 뭘 좀 만들고 있는데 한 5분 뒤 문 두드리면 나인 줄 알고 문 열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그는 후라이팬에 달걀 후라이 두개를 얻은 김치 볶음밥을 들고 나에게 왔다. 그는 늘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아주 작은 일에도 꾸밈없이 최선을 다했고 매번 사랑과 우정을 다져왔던 터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우린 늦은 시간까지 삶에 대해, 그림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이 되었다. 야경군의 눈을 피해 후라이팬을 들고 두 블록을 뛰어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실습여행으로 바닷가 어는 섬마을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리고 한동안 그와의 소식이 끊겼다.

머리에 하얀 리본을 달고 교회에 나타난 동생을 보고 조심히 물었다. 혹 부모님이... 아니예요. 오빠가...에 빠져....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2주 전 통행금지를 피해 달려가던 그의 뒷모습, 골목 코너를 돌아서다 손을 저으며 들어가라던 해맑은 그의 미소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짧고 굵은 인생을 불태우다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슬픔에서 깨어난 어느 날.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던 현실이 한 청년의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뜨겁게 살다가 다 주고 간 그의 삶이 고귀해 보였다. 무료한 삶을 마지못해 살고 있는 현대인의 병 같은 삶에 비할 수 있으랴. 남들 다 가는 그런 평범한 삶이 아닌 반토막, 아니 삼분의 일토막의 삶도 살지 못했지만 뜨겁게 사랑하면서, 거침없이 주고 나누는 삶을 살아냈던 21살의 청년, 내 그리운 친구여!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처음 부분이다. 뜨겁게 살아가고 싶고, 뜨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처럼 짧지만 불꽃처럼 살다 가고 싶다. 내 몸이 부서져도 하고 싶은 대로 사랑을 펼치며 살고 싶다. 얼마나 빠르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한달이 지나가는지 모른다. 시간이 아깝다. 내게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인가? 적고 쓸모 없는 작은 초들을 녹여 굵고 짧은 초 한자루 만들어 본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타오르라. 부끄럽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 그리운 친구여!(시카고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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