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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상처는 들여다 보면 더 아프다. 감추고 덮어두면 종국에는 병이 된다. 따가와도 약 바르고 붕대 감고 아픈 부분을 드러내야 상처는 치유가 가능하다.

어릴 엔 천방지축으로 잘 넘어져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피가 흐르고 깨진 무릎도 빨간색 약을 바르고 어머니가 호호 불어주면 약 때문인지 어머니 입김 때문인지 삼사일이면 상처가 아물었다. 잔병치레도 가지가지, 콧물감기는 달고 다니고 편두선이 잘 부어올라 목이 아팠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호박넝쿨이 꼬부랑 달려있는, 햇살 한바가지 쏟아지는 담장 앞에 날 세워두고 “햇님 햇님, 우리 착한 희야 목젖 내려 앉은 거 햇님이 감쪽같이 고쳐 주이소”라고 빌었다. 어머니가 아픈 목 언저리에 손을 대고 비비면 거짓말 같이 목이 덜 아팠다. 그 때부터 나는 알았다. 병원이 없는 시골에서 엄마와 방긋 웃는 햇님이 의사라는 걸.

요즘 콩알만 해진 간이 좁쌀처럼 작아졌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놀라 심장이 콩닥거린다. 리사가 기침 두 번만 해도 체온계로 열 재고 생강청을 먹인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파이프 터졌나 간 떨어지고 바람에 문이 쾅 닫히면 소스라치게 놀라 대들보(?)가 무너졌나 호들갑을 떤다. 혹시나 개스 스토브가 새서 집이 폭파될까 걱정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늘까지 붉게 물들인 캘리포니아 산불과 올해 28번이나 발생한 역대 최다 열대성 폭풍 허리케인을 번갈아 본 탓일까.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죽은 것처럼 땅바닥 기며 사는데 이 참담한 현실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트라우마(Trauma)’는 큰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 트라우마(τραῦμα)에서 유래 됐다. 과거에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같은 순간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이다. 프로이드의 ‘과학적 심리학 초고(1896)’에는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광장공포증(廣場恐怖症, Agoraphobia)으로 고생하는 엠마부인의 이야기기 나온다. 엠마는 12살 때 어떤 상점의 점원들이 자신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도망쳐 나와 그 연유로 상점에 가는 걸 두려워한다. 프로이드는 상담을 통해 또 하나의 사실을 찿아내는데 엠마는 8살 때 어느 상점주인에게 성기를 만지는 성추행을 당한다. 이 사건은 여덟살 엠마에게는 성적 분별력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라서 ‘은폐 기억’으로 남게 되는데 이러한 잠재된 기억은 유사한 사건이 주어지면 뒤늦게 사후적으로 환기돼 트라우마로 발전된다.



개개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두 가지의 사건, 즉 두개의 인자가 모여 병인(病因)을 완성시키고 서로 결합돼 트라우마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후성 논리의 중요한 특성을 설명하는 단서다.

아들 녀석이 붙여 준 내 별칭은 ‘Worry Wart(걱정꾸러기 사마귀)’다. 애칭은 BaBo(바보). 그러고 보면 바보 같이 걱정 없이 산 날이 하루도 없다. 방방 뛰며 앞뒤 안 돌아보고 미친듯이 하루를 백날 같이 살았다. 그동안 잘 버티고 살아왔다. 앞만 보고 달리는 때가 좋았다. 사람 구실하고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죽자사자 헤엄치며 살았다. 시련은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는 게 두렵다. 살아 남으리라. 숨 막히는 마스크 벗고, 그대와 나 사이 높은 장벽을 허물고, 꽁꽁 묶인 마음의 빗장 풀고, 잠가둔 사랑의 자물쇠 열고, 나눠 먹고 같이 먹으며, 아픈 상처에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어머니 숨결에 의지해 바보처럼 견디며 살아가리라.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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