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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어머니와 딸

한 다리가 천리다. 손주들이 귀해도 내가 낳은 딸만 못하다. 애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딸이 안쓰럽다. 딸 내외가 추수감사절 함께 보낸다고 꼬맹이 둘 데리고 장거리를 달려왔다. 코로나 테스트 받고 두 주일 다니러 온다기에 이 참에 할머니 노릇 단단히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흥분과 기쁨은 삼일, 결론부터 요약하면 기진맥진에 혼비백산, 넉아웃된 상태다. 두 살이 채 안 된 땅콩 만한 손자는 냄비에 콩 볶는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달려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세살박이 손녀는 질문이 어찌 그리 많은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창의적인(?) 해답 내놓기는 물 건너 갔다. 어쨌든 육탄전으로 추수감사절 터키 먹을 때까지는 할머니 체통 걸고 버텨야 한다. 올 때 반갑고 갈 때 더 반갑다는 말이 실감난다.

신문방송학과 요리예술학을 전공한 딸은 갖은 노력으로 푸드 네트워크(Food Nework)에 입성, 레이철 레이쇼(Rachael Ray Show) 수석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하며 방송에 출연했다. 그 방면에 창창한 앞날이 기대됐는데 결혼하고 아이 둘 낳은 뒤 전업주부로 변신했다. 뉴저지에 살면서 어린 아이 둘 보육원에 맡기고 뉴욕까지 가려면 고생은 제쳐 두고 비용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주중에 종일 보육원 맡기는 시간 외에 아침 저녁으로 돌볼 베이비시터가 필요하고 새벽까지 쇼 촬영이 있는 날은 엄마 노릇 하기 힘들다며 미련없이 직장을 접었다.

“할머니 살아계셨으면 애들 키워 주실텐데…”라는 딸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 우리집 세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나는 ‘엄마’ 명찰만 달았지 애들 돌보는 일과 교육은 전적으로 할머니 몫이였다. 내가 미술업계에서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도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애들은 아직도 할머니란 단어만 들어도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거린다. 우리 아이들 인생의 받침돌은 든든한 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이다. 그 사랑과 돌봄은 타인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심성을 길렀다. 청춘에 홀로되신 어머니는 평생토록 나를 지키고 내 아이들을 돌보며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희생을 거룩하게 견디시며 애들과 내 삶을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하셨다.

영국의 한 신문이 윈스턴 처칠에 대한 특집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모두 조사해 ‘처칠의 가장 위대한 스승들 39’란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읽은 처칠은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 한 분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라고 신문사에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꿈에 할머니 봤다” 했더니 “행복한 우리 모습 보고 계신 거야”라며 딸이 웃는다.



‘네가 좋으면/ 내 어깨에 흥이 돋고/ 네가 웃으면 / 내 가슴으로 꽃이 오고/ 네가 신나면/ 내 허리에 춤이 핀다/ 행복한 너를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남정림의 시‘우리의 행복’.

나이 들면 행복이 정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것에도, 가지고 싶은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들의 작은 몸놀림, 밝은 웃음, 작은 속삭임이 행복인지를 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흩어진 장난감 주워 담고 부엌바닥 소리 안나게 닦으며 혼자 웃는다. 해바라기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길, 조약돌보다 작고 깨알 보다 고소한 손주들의 미소로 맞을 아침은 등 푸른 생선처럼 싱싱하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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