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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화분갈이

오래된 흙을 덜어내고 영양분 있는 새 흙을 갈아주었다. 통풍이 잘 되는 양지 바른 햇빛에 내다 놓으며 시들했던 잎들이 힘차게 뻗어나기를 기대했다. 얼마 후 물을 주다가 줄기 아래 부분부터 노랗게 변해가는 잎들을 보았다. 한동안 몸살을 앓던 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을 회복한 듯 새잎을 내고 푸르게 자라고 있다. 아마도 흔들렸던 뿌리가 제 자리를 찿는 동안 잎들이 말라갔던 모양이다. 늘 제자리에 심겨져 흔들림 없이 자란 식물일수록 잔뿌리를 솎아주고 흙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 감을 알게 되었다. 화분갈이는 타이밍이 그만큼 중요하다. 시기를 놓치면 식물을 잃을 수도 있고, 죽어가는 식물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조와 어쩌면 이렇게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굽이굽이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을듯한 순간들도 있었다. 수고하여도 거둘 수 없었던 좌절의 날들. 뿌리채 흔들려 더는 지탱할 수 없었던 시간들, 먼저 손 내밀지 못해 하나되는 힘을 잃어버린 날들을 떠올리며, 화분갈이 한 식물이 뿌리내리기까지 말 못하는 심정의 날들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지나온 시간들은 어김없이 저마다의 길을 내었다. 곧고 쭉 뻗은 길도 있지만 구부러지고 패인 길도 보인다. 앞으로도 남은 인생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길 위에서 걸음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 길을 걷는 동안 펑펑 내리는 눈을 치우다 눈사람이 된 적도 있고, 가을 단풍에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꽃이 지고 난 후 맺은 씨방 속 까만 꽃씨가 익어 소담히 터져 나온 어느날의 행복도 잊을 수 없다. 그 점 같은 작은 씨앗 속에 잠자고 있는 예쁜 꽃들의 마법을 풀어줄 어느 봄날의 손길을 기대하며 잠 못 이룬 날도 있었다. 이런 시간과, 풍경과, 생각의 이어짐이 오늘의 내가 아닌 듯 싶다. 고난의 시간들이 오히려 자양분으로 쌓여 새싹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운 역전의 시간들도 있었다.

출구를 찿지 못한 미로의 한 가운데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쳐 기도한 시간도 있었다. 지나온 시간들의 그리움은 푸른 멍처럼 남겨져 있지만, 다시 돌아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늘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애틋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남은 인생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길 위에서 걸음을 마치게 될 것이다. 남겨진 내 길을 위해 후회 없이 온 힘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화분갈이 몇차례 하고 나니 세월이 이만큼 흘러갔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의 내면에 아직 쌓여있던 미움과 아픔의 기억들을 덜어내는 일. 오늘을 사랑과 소망의 새 푸대에 담아내는 일. 조금은 느리더라도 두번 두드려가며 구부러지고 패인 길을 곧고 바르게 만들어 가는 일만 남겨져 있다. 어느 날 내 인생의 시간이 마감하여 그 자리가 나의 마지막 풍경이 될지언정, 감사하며 그 길 위에서 영원한 화분갈이로 인생을 마감 할 것이다.(시카고 문인회장)

화분갈이

미루고 미루다 화분갈이를 한다 / 삼십 년 같은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너를 꺼내어 / 털어 내고 잔뿌리를 자르고 새 흙을 덮어 주었다 / 그렇게 서너번 치루고 나니 / 시간이 살처럼 날아, 너무 멀리 밀려와 있더라 / 오랜 기다림 끝에 새싹을 반기고 / 나무 밑둥에서 자식처럼 / 몇개의 새 가지와 푸른잎 몇개를 얻고나니 / 인생의 꼭지점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 / 몇번은 잘리고 몇번은 추수리다보니 / 삶은 피었다 지는 꽃과 같더라 / 거슬러 흐르지 못하는 강물이더라 / 스쳐가는 바람이더라 /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과 풍경에 젖어 / 어느 날 어느 순간 나도 어느 풍경으로 남는 것이더라 /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곳에 흙으로 남는 것이더라 / 죽은 가지 끝에 움트고 있는 새싹처럼 / 나의 봄에도 둥글고 푸른 너의 얼굴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 / 마법이 풀린 봄날의 햇빛이 너의 얼굴 가득 비추는 날 /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저 언덕을 넘어 / 산 철쭉 가득 핀 바위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지고 싶더라 / 새벽같이 찾아온 이 고요에 다시 잠들고 싶더라 / 수고러운 아침을 버리고 /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곳에서 / 더 이상 슬픔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곳에서 다시 깨어 나고 싶더라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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