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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대추나무에 꽃이 피었어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련한 게 사람이라더니 그렇게 가실 줄 알았나요. 남은 이의 몫이 애닯다 하나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는 당신의 마음은 또 어떠했겠어요. 그러나 난 알 수 있었어요. 얼마나 길고 험한 길 끝에 떨림으로 당신이 서 있는가를.

나무가지 끝마다 보석 같은 얼음꽃이 피고, 겨우내 자란 꽃눈들은 봉오리마다 작은 소리로 재잘거리며 “네가 먼저 아니 내가 먼저 꽃망울을 터뜨릴 꺼야” 시샘하는 입춘이 지나가고 있어요. 온 대지를 덮어버린 눈밭의 위력도 이젠 집요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비추는 햇살 아래 녹아 내릴 거란 상상을 해 보는 건 아직 이른 바람인지 모르겠네요.

지난 한달 이곳 시카고엔 눈이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서 집집마다 큰 눈덩이들을 껴안고 살고 있어요. 고드름이 얼마나 큰지 웬만한 아이들 키만 해요. 샤핑몰 주변엔 집채만한 눈덩이들이 쌓여있고, 발목을 덮는 눈 때문에 뒷뜰에 나가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당신은 안녕 하신가요? 이젠 누우신 그곳이 낯설거나 불편하지는 않으신지요? 서글픈 노을이 낮게 내려앉은 창가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곳 Rosehill Cemetery 당신 누운 자리 위에도 눈이 많이 쌓였겠구나 생각했어요.

기억하시죠? 봄이 다 지나고난 후 늦게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뒷뜰 대추나무요. 죽은 줄 알고 파낼 뻔한 그 나뭇가지에는 아직 꽃눈도 잎눈도 맺히지 않았어요. 그래도 꽃눈자리, 잎눈자리는 가지의 어딘가를 밀어내려 애쓰며 움트고 있겠지요. 다른 꽃나무들은 봄이 되면 여기저기 꽃이 피고 저마다 푸른싹을 내밀며 사람들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 가지만, 봄에 일찍 핀 꽃들이 시들고 작고 예쁜 입사귀가 푸르게 나무를 뒤덮히기 시작 할 무렵, 겨우 푸른싹 어리둥절 내미는 대추나무요. 모두가 푸른데 유독 작은 꽃몽오리를 내밀며 늦은 봄 기지개를 펴는 대추나무 말이에요.



‘처음 만남’이란 예쁜 꽃말을 가진, 열매를 맺고 난 후 비로소 꽃이 떨어지는 어머니를 닮은 대추나무 말이에요. 당신이 이쁘다, 장하다 하시며 나무 밑둥을 토닥이셨던 그 나무 말이예요.

죽은 듯 숨 고르다 좀 늦으면 어떠리. 다투어 피지 않고 제 몸이 허락할 때 꽃피우면 어떠하리. 모두가 앞장설 때 뒤 늦으면 어떠하리.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만나 일생 그 마음속에 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왔다면 그 삶은 보석같이 빛나는 삶이 아니었겠는가. 36세의 나이에 홀로 되신 어머니, 그 나이면 세상은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더 빠르게 더 일찍 꽃피우기 위해 나음을 선택했겠지만 당신은 다름을 택하셨지요. 모든 사람이 꽃 피울 때, 기뻐하고 행복할 때 뿌리로부터 쉴 새 없이 물과 양분을 끌어올리는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할 다름이라는 삶으로 4자녀를 키우셨지요. “이젠 당신 곁으로 가야 할 시간이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주었어요. 뒤돌아보니 어찌 살아왔나 믿어지지가 않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것 같아요. 물론 아이들은 모두 출가했고 손자 손녀들도 몇은 결혼해서 벌써 자녀들이 있답니다. 많이 보고 싶으시죠? 만나는 날 아이들 사진 보여줄게요. 이젠 당신 볼 면목이 있네요. 당신 만날 날만 남았어요. 날씨가 차요. 부디 그곳에서 잘 지내기 바래요”

당신이 숨을 거두기 몇날 전. 어머니의 얼굴은 여위고 창백했지만 빛나 보였다. 당신의 눈빛은 멀리 바라보는 듯 희미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어머니! 대추나무에 꽃이 피었어요. 꽃등을 매달아 놓은듯해요. 어서 일어나셔서 함께 집으로 가셔야지요” 당신은 눈을 깜빡이며 느리게 고개를 움직였다. 돌아누운 당신의 눈가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벼개 밑엔 가족사진 몇 장이 삐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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