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변곡점을 임계점으로

사는 게 힘들다고 넋 놓고 있으면 넋이 나간다. 넋은 살아있는 사람의 육신에 깃들어 생명을 지탱해 주는 기(氣)다. 넋은 육신에 구애 되지 않고 자유롭지만 사람에게서 넋이 빠져나가면 실성하거나 기절한 상태가 된다. 넋은 육신이나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자체를 존속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넋은 얼•혼(魂)•혼령•혼백•영혼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백(魄)은 죽은 자의 신격화된 넋을 가르킨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넋을 찿아 헤매는 여정인지 모른다. 삶이 비록 죽음으로 이어지는 한갓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해도 모진 목숨줄 붙잡고 믿고 추구하는 것들을 향한 영혼의 자유를 꿈꾼다.

아무 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살다보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일이 틀어지고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황당하고 기막힌 상황이 벌어져도 뒤로 자빠지지 말고 즉각 수습에 착수해야 재기가 가능하다. 한발짝 물러서서 초발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지난 일년간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웠다. 자영업 하는 사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목숨 건 투쟁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왔다. 눈에도 안 보이는 적과 싸우는 동안 친구와 지인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평생 몸 바쳐 일군 사업체가 문을 닫았고 일터를 빼앗겼으며 옹기종기 살던 집을 잃은 이웃들의 절망 어린 눈빛을 보았다. 두 봉지 그로서리를 받기 위해 끝간 데 없이 줄 지은 차량행렬과 비닐 봉지에 싸여 냉동 트럭에 실려나가는 시체들을 보는 것은 참혹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정말이지 우리가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의 성지인지 지옥문을 향한 피라미드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변곡점(變曲點)은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낸 곡선 위의 점이다. 미적분학에서 변곡점은 함수의 그래프가 위로 볼록인 상태에서 아래로 볼록인 상태로 변하거나 그 반대의 상태로 향하는 점이다. 평면 곡선에서 곡률의 음양이 바뀌는 점을 말하는데 중대한 전환점이 와서 증감 추세가 바뀌었을 때 생긴다. 변곡점은 인생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현상, 경제적 추세를 바꾸는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해 증감 추세가 바뀌었을 때 사용 되기도 한다.

확진자 감소와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변곡점을 맞을 추세다.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상태나 형국의 급격한 전환이 발생하지 않는다. 변곡점(Point of Inflection)이 임계점(Critical Point)으로 전환해야 새로운 질서가 확립된다. 임계점은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이다. 액체인 물은 끓기 시작하면 임계점을 넘기면서 수증기인 기체로 변한다.

팬데믹으로 세계질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조짐이다. 산업구조, 인력. 기술의 근복적 혁신이 요구되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변해야 살아 남는다. 내가 변해야 나라가 변하고 세계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엄숙한 사실 뿐이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하워드 막스의 말을 새겨 둘 필요가 있다. 두 손 놓고 걱정해서 일이 해결 된다면 밤낮 없이 걱정만 하겠다. 앞날을 기약 할 수 없다 해도 지금 처한 절망을 견디고 혼신으로 버티다 보면 중력도 형태도 없는 기체로 자유롭게 하늘 속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지 모를 일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