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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1주년 특별 인터뷰 Ⅱ]장기남 전 문화회관•한인회 회장

‘항상 감사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 실천
“땀과 노력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소중한 가치”

시카고에서만 45년을 보낸 장기남 전 시카고 한인회 및 문화회관 회장은 궁정동 43번지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다. 청운국민학교, 경기중고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1975년 유학 차 미국에 왔다. 대학 후배인 아내(김승주)의 어머니, 장모님은 “좁은 땅 대신 넓은 곳에 가서 꿈을 펼쳐 보라”고 젊은 사위를 격려했다.

하지만 공부도, 꿈도 생활이 해결되어야 가능한 일. 직장(RBM)을 다니며 학업을 병행하던 그는 미국에선 바텐더를 하면 수입이 좋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가져온 한국 바텐더 자격증을 들고 시카고 레스토랑들을 찾아다니며 구직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에서 갓 온 그에게 바텐더 자리를 선뜻 내주는 업주는 없었다. 한 곳에서 바텐더 대신 접시딲이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업주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열심히 일했다. 성실한 그를 눈 여겨 본 주인은 바텐더가 가끔 결근을 할 때면 그에게 대신 맡기곤 했고 나중엔 정식 바텐더가 됐다. 주말도 없는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선배들의 말처럼 수입이 괜찮았다.

이민자들 가운데는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하던 어떤 사람인데…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장 회장은 열심히 일하는 땀과 노력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에 본격적인 눈을 뜬 그는 어깨 너머로 익힌 식당 비즈니스에 관심을 뒀다. 하지만 수입이 좋은 식당일수록 업주는 사실상 가정을 포기하고 오직 일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곤 그만 뒀다.

1982년 우연찮게 카드 및 선물 전문 홀마크(Hallmark) 비즈니스와 연결됐다. 문제는 보증금 5만 달러였다. 제대로 된 크레딧 점수도 없는 그에게 5만 달러는 말 그대로 거금이었다. 결국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카드 팔아 몇 푼 벌까라고 하지만 노력한 만큼 수입이 좋았다.” 고객 관리가 남다른 그에게 홀마크사는 다른 매장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골드 크라운’ 홀마크(Gold Crown Hallmark)를 부여했다. 나중에 홀마크 수입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부 한인들이 동종 업계에 뛰어들곤 했지만 대부분 얼마 되지 않아 손을 들었다. ‘골드 크라운’은 지금까지도 한인으로선 장 회장이 유일하다.

홀마크 매장을 5개까지 늘린 그는 2015년 마지막 남은 매장을 조카에게 넘긴 후 은퇴했다.

“열심히,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미국은 그 보답을 받는 사회다.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직원들에게 늘 친절하라고, 얌체 같은 고객도 있지만 손해는 사장인 나의 몫이니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했을 뿐이다.”

홀마크 비즈니스를 시작한 후 큰 어려움은 없었다는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두 딸(장선이, 장진이)에게 투자했다.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도록 아낌 없이 지원했다. 부모의 기대대로 시카고대학, 컬럼비아대학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차례로 마친 두 딸은 물론 두 명의 사위까지 재정적인 부담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했다.

“100% 잘 한 투자죠. 자식들이 잘 살면 모든 부모는 행복한 데 두 딸과 사위들이 사회의 동량이 되고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구성원으로 자신들의 꿈을 잘 펼쳐 가니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두 딸에게서 손주 다섯을 본 장 회장은 이즈음 작은 딸네와 ‘따로 또 같이’ 산다. 문화회관과 한인회장 재임 당시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그는 2012년 담도암이 발병,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아빠가 편찮으시니 우리집에 오시라”는 딸의 권유를 받고 5에이커에 이르는 딸네 집 한 켠에 부부용 집을 지었다. 비밀통로로 이어지는 집이다 보니 손주들이 수시로 오가는 생활이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고.

2003년 ‘한인사회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지인들의 권유로 한인문화회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고 한인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그는 이후 문화회관 회장 및 이사장, 한인회장을 지냈다.

특히 현재의 한인 문화회관이 있기까지는 그의 남다른 열정과 애정이 큰 힘이 됐다. 암투병 중에도 한인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일 웨이터를 하며 기금을 모은 일은 지금도 회자된다.

“한인사회 활동은 감투가 아니라 봉사라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 겸손해야 했다.”

어린 시절 부업으로 인삼밭을 운영했던 부모님 덕분에 이민 초기부터 중서부 지역 곳곳의 산삼을 알게 된 그는 지금도 여건이 허락하면 가끔 산행을 겸한 산삼찾기에 나선다. 어렵사리 구한 산삼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투병 중에 있는 이웃과 문화회관에 사랑과 관심을 보내준 이들에게 기부한다.

‘항상 감사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의 철학을 갖고 있는 장 회장의 도움을 받은 시카고 한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도운 일보다 “목사님과 주변 좋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새 생명을 다시 찾았다”고 외려 감사한다. 앞으로도 건강 유지와 함께 행복한 가정, 좋은 친구들,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를 뜻 깊게 보내고 싶다는 게 장기남 회장의 소박한 바람이다.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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