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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칼럼: “애마 변천사”

나의 애마愛馬 ‘카이엔Cayenne’을 타고 달라스 문학 교실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을 하다 보니 새삼 차에 대한 고마움이 들면서 오늘날이 있기까지 역동의 삶을 함께 질주해 주었던 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1987년 가을, 내 생애 처음으로 ‘Pony-2’ 중고차를 사면서 마이카 족이 되었다. 1960년대 초에 새나라 자동차가 출현해서 시발택시를 대체하는 등 한국 자동차 공업의 현대화 기수 역할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 마이카 붐이 일어난 것은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하며 국민소득이 높아질 무렵이었다. 때맞춰 1975년에 현대자동차가 첫 국산 모델 ‘Pony’ 승용차를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말이라는 뜻의 포니는 차체는 작았지만, 아름다운 디자인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당시 모든 이들의 로망이자 드림카로 등극하였다.
1988년 봄, ‘소나타Sonata‘로 바꿔 탔다. 1985년에 처음으로 출시된 소나타는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파워핸들, 자동정속 주행장치, 자동조절 시트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첨단 사양 등을 적용했다. 주행 안정성을 강조하며 5단 변속기를 장착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를 이끌었던 새로운 국민차이다. 소나타는 출시 이후 단종 없이 지금까지 건재한 유일한 모델이며 전 세계적인 Best Selling Car이다.

2004년 11월부터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는 KORAS에서 내준 관용차 현대 ‘그렌저Grandeur’를 타고 다녔다. 1986년 처음 출시된 이래 ‘제니시스Genesis’ 고급 승용차가 출시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고급 승용차의 선구자로 불리던 모델이다. 개인차로는 ‘도요타 솔라라Solala’ 중고차를 구입했다. 날렵한 디자인의 투 도어 스포츠카로서 쌍둥이 아들의 휴스턴 대학 통학용으로 주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은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처럼 신분증 대용으로도 쓰이기에 꼭 필요했다. 우리가 미국에 왔을 무렵에는 한국 운전면허증을 인정해주지 않아 영어로 된 운전면허 필기시험과 도로주행 시험을 다시 봐야 했다.
Sempra LNG에 입사하여 멕시코와 루이지애나에서 근무할 때는 ‘도요타 캠리Camry’를 갖고 가서 타고 다녔다. 2011년 6월부터는 4년간의 건설현장 근무를 마치고 휴스턴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동안 시골길을 오가며 고생한 캠리는 며느리에게 주고, 한국에서 강남 소나타라고 불리며 인기가 많은 ‘Lexus RX350’을 샀다. 운전 편의성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고급 SUV 차량으로 장거리 여행 등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드디어 2015년 6월 Sempra LNG를 퇴직하고 은퇴했다. 가족들은 나의 마지막 차로 독일 차인 ’Porsche Cayenne’을 사주었다. 나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미국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You deserve it!' 하면서 분에 넘치는 차를 은퇴 선물로 준 것이다. 나의 평소 Dream Car는 Benz였지만, 스포티한 디자인에 주행성이 좋아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카이엔을 추천한 것이다. 비록 차 값은 내 통장에서 나갔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를 부려보았다.
비행기나 기차를 이용해서 여행할 때는 ‘타고 간다’는 말을 쓰지만, 내 차로 운전해 갈 때는 ‘끌고 간다’는 표현을 쓴다. 카이엔을 운전하면서부터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1월부터 글공부를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달라스를 오가고 있는데, 전혀 피곤한 줄을 모른다. 왕복 540마일의 장거리 운전이지만 자동차 흐름에 맞춰서 ‘Cruise Control’만 잘 해 주면, 내가 카이엔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카이엔이 나를 태우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직선 도로가 적고 차량도 많아 정체가 심하기 때문에 Cruise Control에 의한 운전이 일부 고속도로 구간을 제외하곤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곳 텍사스에서는 일부 도심 구간을 제외하곤 50마일 이상 거리도 Cruise Control로 놓고 편하게 운전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마이카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 "마누라는 빌려줘도 차는 절대 안 빌려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만큼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컸고, 내 차를 갖는 것은 모든 샐러리맨에게 외적인 신분 상승의 로망이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자동차의 진화는 어디까지가 될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Google에서 선도하고 있는 인공지능에 의한 자율 주행 무인 자동차 시대도 곧 오리라 생각한다.
마이카 족이 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휴스턴은 한국처럼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어서 자동차 없이는 마트에 가기도 어렵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는 신발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출퇴근이나 자동차 여행을 다니면서 주행한 거리가 족히 150,000마일쯤 된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가 4만 km라고 한다. 지구 6바퀴 이상을 무사고로 함께 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자동차 운전의 중요한 Tip은 교통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물론 매 순간 방어운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곳 텍사스주에서만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일 년에 2,000명 이상이다. 운전 중에 통화를 하거나 Text 메시지를 보느라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도 한몫을 한다.

한국에 살았다면 가족이 각자 차를 한 대씩 굴리고 다니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왕복 10차선 고속도로를 꽉 채운 나홀로 족의 차들 때문에 극심한 정체를 이룬다. 어느 도시를 가든 일 년 내내 도로 확장공사를 하지만 늘어나는 차량의 속도를 따라잡지를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뭔 놈의 공사가 그리도 더딘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Cayenne을 사준 가족들의 배려가 나에게 자존감 회복은 물론 노후의 행복을 안겨주었다. 내게 있어 차는 단순한 운송수단만이 아니라 분신이다. 이곳에서 성취한 모든 것을 함께 해 준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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