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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칼럼> 유나이티드 워십 수련회에서 들은 하나님의 음성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1/10 12:44

필자는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유나이티드 워십(United Worship) 수련회에서 목자로 섬길 수 있었다. 3박 4일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 한인 2세, 1.5세, 또는 보통 한국 청소년들을 섬기면서 느낀 점들과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이 수련회를 통해서 하셨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2007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아프리카 차드에서 올해로 11년째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고 필자는 인생의 절반을 선교사 자녀, 또는 MK(Missionary Kid의 약자)로 살아왔다. 불어는 차드의 공용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필자는 대부분 초등교육을 불어로 받았다.

그러나 2011년에 영어 학교 설립 후에 필자는 중등교육을 영어로 받고 고등학교는 케냐에 위치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설립된 리프트 밸리 아카데미(Rift Valley Academy)로 유학을 떠나 작년 여름에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 필자는 미국 아칸소(Arkansas)주에 위치한 기독교 사립대학인 존 브라운 대학(John Brown University)에서 수학 중이다. 따라서 필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디 한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필자는 지난 시간 동안 이 점에 대해서 적지 않아 서운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필자를 다재다능하게 꾸며준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긴다. 필자가 MK로서 겪었던 정체성 위기를 돌아보면서 어쩌면 요즘 미국 한인 아이들이 마주하는 시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고려한 것이 이번 수련회에서 섬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수련회에서 8명의 9학년 남학생들을 한 조로 섬기게 되었다.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모두 2세 또는 1.5세 미국 한인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고등학교 유학 중인 한국인이었다. 사실 이렇게 많은 2세를 한 번에 상대하기는 처음이었지만 필자의 한인 MK 친구들과 약간의 공통적인 점도 은근히 많았기 때문에 필자는 학생들과 무난히 소통할 수 있었다. 물론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같이 먹고, 자고, 웃고, 예배하며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수련회 강사로는 필자의 대학인 존 브라운 대학 부총장으로 섬기고 계신 스티브 비어즈(Dr. Stephen Beers) 박사님이 섬기셨다. 비어즈 박사님은 ‘올인(All In)’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 강론하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씀은 요셉의 일생을 통해서 보이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이 말씀이 더더욱 필자에게 와 닿는 이유는 필자가 요셉과 같이 외부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필자가 차드에서 MK로서의 삶에 대해 불평했을 때에 한때 필자의 아버지께서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기에 이 말씀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그 당시 필자는 원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수련회를 통해서 다시 맞닥트린 요셉의 이야기는 감회가 남달랐다.

때마침 같이 수련회에 참석하신 송준석 교수님과 비어즈 강사님께서 필자에게 이 아이들 앞에서 선교사 자녀로의 삶에 대해 간증을 나누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필자는 걱정 반 기쁨 반으로 찬성하였고 은혜중에 간증을 탈 없이 마쳤다. 필자는 아버지가 사역보고와 간증하시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지만, 직접 선교사 자녀로서 간증하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필자에겐 의미심장한 순간이었다.

사실 필자는 부모님이 선교사로 아프리카 중에서도 덥고 열약한 땅인 차드로 떠나오신 것에 대해 초반에는 상당히 원망스러웠고 상심했었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는 넘지 못하는 산과도 같았고 그것은 필자를 항상 괴롭혔다. 항상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은 “왜 내가 여기 있는가?”이었다. 요셉도 아마 필자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번도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하였다고 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셉은 주어진 상황마다 최선을 다하여 섬겼다고 적혀있다. 가장 낯설고 절망스러운 시간에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는 절대적 순종, 필자는 그 절대적 순종이 곧 선교이자 그리스도의 앞에 산 제물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롬 12:1).

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 자신의 형제들에게 정체를 밝힐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보내셨다는 믿음, 이 믿음이 선교의 기초 또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필자가 아직 차드에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아침 필자는 부모님이 먼 차드 땅까지로 떠난 점에 대한 불평, 그리고 외부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짜증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럴 들으신 필자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아침 밥상 앞에 모인 후에 모두에게 질문 하셨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 아니?” 토라진 필자는 정답을 알지 못했고 알았어도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100년이 걸렸어. 그 긴 시간 동안 오직 하나님의 언약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방주를 지은 거야” 솔직히 그때는 이 말씀의 깊이를 모르고 지나쳤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면 틀린 점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 선교사를 비롯한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같다. 그저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순종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다.

농부가 씨를 뿌려도 열매가 맺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듯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로서 우리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복음을 퍼트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열매가 언제 맺히는지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우리의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 노아가 백 년 동안 이웃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은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지키시리라는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련회를 통해 주님은 그간 선교사 자녀로서의 삶에 대한 필자의 마음속 원망과 씁쓸함을 차례차례 끌로 파내셨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필자에게 주님은 항상 우리 옆에서 같이 동고동락하시는 분이라는 깨달음을 주셨다. 요셉과 노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신다.

또한, 마치 사자가 자기 새끼를 벼랑으로 몰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마하려고 일부러 인생에 장애물을 놓으시는 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는 확신하고 ‘올인’을 외치며 주께서 필자에게 예비하신 길로 믿음과 기도로 전진했으면 한다.

전 재 희
존 브라운 대학교(John Brown University) 생화학과 및 수학과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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