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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전환시대의 논리

성 어거스틴(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은 영원성(영생)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영원한 존재 즉, 창조주만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과 시간을 통해 나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현실화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시간은 결코 윤회하지 아니하며 어떤 영원성을 향해 전진함과 동시에 영원하고 절대적인 곳에 이르도록 고안된 창조적 장치다. 결국 상대적이고 불안정한 현재는 모두 미래의 영원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원자력 시계는 수십억의 일초도 계산해 낸다. 그 결과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양성을 띠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고안해 낸 창조의 신비를 이 개념에 에둘러 사용해 본다면 현대의 복잡 다양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 땅에서의 존재는 영원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희망과 소망으로 연결되며 그 소망된 시간(미래)은 믿음과 함께 작동된다. 한계 된 존재가 다양한 공간 안에서 영원하고 불변하는 창조주를 향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새삼 놀랍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COVID-19 재앙으로 인해 세상은 신공황상태에 이르고 있다. 당장의 사재기와 경제적 불황은 차치하고라도 전시처럼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인류의 삶은 상식을 넘어서는 변화가 예측되는 가운데, 디지털 시대는 자의 반, 타의 반 훨씬 가속화될 것이며 이것은 생존의 문제로까지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거쳐온 역사적 발전 단계와는 전혀 다르게 최단기간 집중학습으로 인류의 전세대가 일시에 새로운 국면으로 이미 전환되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과는 달리 하나의 시간과 통일된 공간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이른바 사람이 도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거미줄처럼 깔린 카메라로 인민들을 너끈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심지어 안면인식으로 자판기 판매를 조절하는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

이러한 전환 시대에 여전히 절대적이고 영원성을 주관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절실하다. 이 세대에 물들지 않고(엡4:22-24),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는 자들로(롬11:1-7)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면 종말로 떠내려 갈 것인지 아니면 역동적으로 헤엄쳐 갈 것인지 명확하게 결정된다. 나아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창조주 뜻에 어긋나게 왜곡하는 자들의 심판은 속히 이뤄질 것이며 (계22:20) 그러한 약속을 붙드는 현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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