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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칼럼] 수치스러운 가문(家門) vs 자랑스러운 가문

1900년 Jukes-Edwards(주크 가문-에드워즈 가문)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됐다. 부제는 “교육과 유전의 연구(A Study in Education and Heredity)”이다. 전체 11장으로 이루어진 그 책의 저자는 미국의 교육가 알버트 원쉽(Albert E. Winship)이다.

제1장에서 저자 윈쉽은 리차드 더그데일(Richard A. Dugdale)이 연구한 주크(Juke) 일가를 소개한다. 주크는 실재의 성씨가 아니라, 혈연관계가 있는 42개의 성씨를 묶어서 지칭한 이름이다. 주크는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roost)”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나뭇가지에 앉아 쉬는 새들의 습성을 묘사한다.

더그데일은 1874년 뉴욕 교도소위원회(New York Prison Commission)의 직원으로 교도소들을 방문하는 일을 했다. 직임을 수행하던 중, 친척들이 대부분 범죄자이거나 극빈자인 6명의 범죄자들을 만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6명의 성씨는 4가지였지만 모두 같은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그데일은 법원과 교도소의 기록, 빈민구제시설의 장부, 이웃과 고용주들의 진술 등을 통해 그들의 집안을 연구했다.

그 연구결과 맥스 주크(Max Juke)라고 하는 사람의 5대에 걸친 후손 540명과 그 후손들과 혼인관계를 맺은 169명을 포함하여 약 1,200명 되는 주크 가문의 사람들의 행적이 밝혀졌다. 1,200명 중에서 300명은 유아시절에 죽었고, 440명은 나태 또는 퇴폐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병약하게 살았으며, 310명이 극빈자, 130명은 범법자, 60명은 절도범, 7명은 살인자였다. 그들 중 50명의 여자들은 방탕한 생활로 악명이 높았다. 단 20명만이 직업기술을 배웠는데, 그중 10명은 교도소에서 배웠다.



조상 맥스 주크는 1720년 경에 뉴욕 주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천성이 선량한 이야기꾼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자기가 말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싫어했다. 학교를 다니기를 싫어했고,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반면에 낚시질, 사냥, 새잡기 같은 것들을 좋아했다. 또한 자연을 좋아했고 자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떠나 아름다운 호수가에 움막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일삼았다. 마치 새가 둥지를 떠나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면 아무 나뭇가지에나 걸터앉아 쉬는 것같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제2장부터 11장에서 윈쉽은 조나단 에드웨즈(Jonathan Edwards)의 가문을 소개하며 주크 일가와 대조한다. 1897년 윈쉽은 자신이 회원으로 활동하던 학회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에드워즈 가문을 연구하게 됐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뉴욕 교도소위원회가 더그데일을 고용할 당시 교도소위원회장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이었음을 알게되어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임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0년대 영적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으며 19세기 유럽세계까지 인정하는 신학자요 사상가였다. 그는 1703년 코네티컷 식민지에서 11명의 자녀들 중 5째로 태어나, 4명의 누나들 그리고 6명의 여동생들과 동기애를 나누며 성장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10살 때 이미 동네 가까운 숲 속에 나뭇가지로 움막을 만들어 놓고 매일 2명의 친구들과 함께 가서 기도했다. 6살 때부터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고, 12살 때 라틴어를 비롯하여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예일대학에 입학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23살에 목사로 안수받고, 노트햄턴(Northampton)에서 25년간 목회했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에 13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그후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로 살다가 말년에 프린스턴(Princeton)에서 총장과 목사로 사역했다. 그는 아들 3명과 딸 8명을 남기고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약 140년이 지난 후 에드워즈 일가는 1,400명 이상으로 성장했다.

에드워즈 가문에 속한 1,400명 중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285명이었고, 그들 중에서 13명의 대학총장과 65명의 교수가 배출됐다. 목사, 신학자, 선교사가 된 사람이 100여명, 변호사가 된 사람이 100여명, 그리고 판사가 된 사람이 30명이었다. 또한 그 훈손들 중에서 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국회의원 다수, 외교관 다수, 주지사 3명, 시장 3명, 군대장교 75명, 작가 60여명, 철도회사 책임자 50명, 금융기관장 여러명, 광산주 여러명이 나왔다.

맥스 주크와 조나단 에드워즈는 둘 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개척지에서 살았다. 맥스 주크는 현재만을 생각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낙천적이고 재치있는 사람이었으며, 실용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단지 그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야 할 이유나 목적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이 낙이었다. 그 결과 발전 없이 반복되는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결국 그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병약하여 삶을 영위하기 위해 또는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며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기독교인 가정에서 신앙과 교육을 중시하며 성장했다. 그런 자세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어 사회에 기여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든는 후손들을 낳았다.

저자 알버트 윈쉽이 주크스-에드워즈에서 강조한 것 처럼, 교육은 학교에 다니면서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교육은 인성을 개발하는 일이다. 사랑과 희락과 평화의 마음을 품게 하고, 대인관계에 있어 인내와 자비와 양선의 자세를 갖게 하기 위하여,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그와 같은 교육은, 주크 가문과 에드워즈 가문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천박함과 가난과 범죄와 질병과 수치를 예방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시민의식과 애국심을 가진 성숙한 인격체가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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