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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답정너? 답정하? 답정하!

상담을 하다보면 답을 몰라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주기 원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처한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정답이라는 것을 선뜻 제시해 주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으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지지받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몸도 마음도 참 힘들다. 이미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상대방의 생각을 떠보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대화는 거듭할 수록 힘들고 부담스럽다.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이다. 자신의 생각은 바꿀 생각이 없고 상대방의 동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다른 대답은 필요없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표현만 달리했을 뿐 똑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묻는다. 무언의 압력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도록 알게 모르게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지친다. 가슴이 답답하다. 고구마를 10개쯤 먹은 것 같다. 답이 없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인터넷 보급과 손안의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정보의 바다에 빠졌다. 많은 정보를 가지면 더 잘 선택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과유불급, 지나치다 못해 넘쳐나는 정보들 때문에 기준이 흐려져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제는 내가 직접 듣고 보고 경험한 지식이 아니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고, 더 나아가 내가 믿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가 되버렸다. 정치적 이슈, 경제적 이슈, 최근 다시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슈들까지, 의견이 좌우로 나뉘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마디로 답이 없는 시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 판단할 수 없는 패닉(panic)에 빠져버렸다.

답정너.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견 따위는 전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처럼 보인다. 혹시 이 모습이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하나님, 저는 내가 가진 문제들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응답해 주시면 됩니다. 다른 대답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기도의 결과를 받고 난 후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기도한 것 같다. 답정하. ‘답은 정해졌으니까 하나님은 응답만 하면 됩니다?’ 혹시 하나님께도 답정너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봐야 한다.



이 시대를 표현함에 있어, 답이 없는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혼돈의 시대라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pandemic)을 지나며 ‘초불확실성의 시대’까지 말하고 있다.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답이 있다. 확실함이 있다. 질서가 있다. 내가 답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답이시다. 답은 하나님만 말하실 수 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사람들이 우왕좌왕 한다. 무질서해 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면 복을 얻는다. 질서가 잡힌다. 다른 말로는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해 진다.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정해진 답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가장 편안한 길이다. 기준이 분명하므로 선택에 고민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힘들어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겠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자니 세상에서 손해를 볼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개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내 안에 하나님의 법 외에 또 다른 법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법, 두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을 믿고 나의 주인으로 고백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준은 오직 하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교회는 순종이 원칙이다. 민주주의의 발달(?)로 교회 안에 많은 소리들이 들어왔다. 물론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말씀과 순종의 관계측면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 독재주의에 가깝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되돌아 보면,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의 삶을 살펴보니 전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이끌어 오셨다. 마치, 불필요한 장난감을 사달라고 고집 부리며 집으로 오지 않는 어린 아이를 그 부모가 얼르고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데려오는 모습처럼. 물론 장난감은 사주지도 않은채 말이다. 수 많은 간증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속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였다.

교회가 운영됨에 있어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 한 사람, 혹은 권력자 한 사람에 의해 독단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여기에 다수의 의견이 견제를 해야 한다. 전진과 성숙을 위한 의견이라면 적극수용해야 하겠지만, 개인의 편의만을 위한 의견에 신앙적 머무름과 물러섬이 예상된다면 양보할 수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개인의 문제해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의 목적대로 들었다 놨다 한다. 자기 입맛에 맞춰서 재가공 한다. 입에 쓴 것은 버리고 입에 맞는 것만 받아 들인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도 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억압받는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받아들였다. 예수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세우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확인하면서 군중들을 성난 폭도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어쩌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미 내 속에 정답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 뜻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는가? 만일 하나님이 내 기도대로 응답해 주지 않으시면 분노하며 하나님을 멀리하지는 않는가? 내 뜻이 관철될 때까지 주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답정너’다. ‘답정하’다.

물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껏 기도하고 자신의 속 사정을 쏟아 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하는 입술이 열리는 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기도는 대화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 마디 기도보다 한마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답은 내게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답이시다. 답을 정하시는 것은 하나님 뿐이다. ‘답정하’.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을 선택하라. 하나님께 답을 물어라. 거기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그 길을 살아보면 그 길이 은혜의 길이었음을 고백하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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