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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Minimal Life”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6/13 14:43

지난달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미국에 15년 사는 동안 다섯 번 이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몇 가지가 특별했다. 집 크기를 삼 분의 일 정도 줄였고, 그동안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던 가스공사 재직 시 업무일지와 수많은 기술 자료들을 처분했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인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홀가분한 느낌이다.

이사를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올가을부터 큰 손주 준영이가 Kindergarten에 입학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한국사람들의 학구열은 높다. 휴스턴에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지역에 따라 교육 환경에 많은 차이가 난다. 아들 내외가 교육 환경이 좋은 메모리얼 지역으로 이사를 하려고 집을 보러 다녔다. 그 중에 며느리도 맘에는 들지만 애들이 좀 더 크면 좁아서 안 되겠다는 집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한번 가 보라고 권했다.

평소 아내와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노후 경비를 줄일 수 있는 작은 집에서 살려는 계획이 있던 터라 우리가 살기에는 내부 구조나 크기도 적당하고 아담한 집이었다. 지금은 장가를 가지 않은 작은아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곧 좋은 짝을 만나서 장가를 가게 되리라 믿고 계획을 앞당겼다. 큰아들이 넓은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대신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손주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되고, 자식은 부모의 생활비를 보태니 상생相生의 도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동안 함께했던 가스공사 업무일지 및 기술 자료들과 후배들이 만들어 준 기념패는 물론 여행을 다니면서 모아 놓은 기념품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내 손때가 묻은 기술 자료들은 Sempra LNG 근무 시 나에게 한국의 LNG 산업 기술력을 보여주는 든든한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은퇴 한지도 꽤 되었고, 업무일지를 참고로 고희 기념 자전 에세이도 발간을 해서 나름 칠십 평생의 삶을 정리한 상황이라 아쉽지만 과감하게 처분했다. 책장 한구석에 먼지를 이고 꽂혀 있던 오래된 교양서적이나 영적 도서들도 정리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색다르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도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Self-Storage 창고였다.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소장품에 애착이 많길래 집에다 보관하고 남는 물품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사설 창고에 돈을 주면서 보관하는 것일까 의아했다. 가정집에서도 연례행사처럼 ‘Garage Sale’을 하고 재활용품 수집 공익 기관인 ‘Good Will’에도 기부를 많이 한다. 하지만 동네를 지나가다 가끔 열려 있는 이웃집의 Garage 도어를 통해서 보이는 수많은 물품을 볼 때마다 상관도 없는 내가 답답했다.

이곳은 인건비가 비싸서 자동차의 부품이나 엔진오일 교체도 직접 하고, 집안의 소소한 수리도 ‘Home Depot’에서 자재를 사다가 직접 하기 때문에 공구 많은 것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거실을 철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미느라 앤틱 가구를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꽤 많은 물품을 가지고 다녔기에 할 말은 없다. 일 년 내내 한 번도 안 입는 옷이나 쓸모 없는 가구와 가전제품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미니멀 라이프’는 2010년 무렵 미국에서 20대 후반의 잘 나가던 청년들이 회사에 돌연 사표를 던지고 과감히 모든 걸 버린 뒤 목적이 있는 분명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좋은 차, 좋은 집, 넘쳐나는 물건들을 가졌지만, 주 70~80시간 일을 하고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일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들이 ‘더 미니멀리스트(theminimalists.com)’에 올린 미니멀 라이프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들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면서 미국 사회는 물론 일본과 한국 등에도 미니멀 라이프라는 붐을 일으키게 되었다.

나는 아내로부터 안 쓰는 물건을 못 버린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아들도 나를 닮아서 그렇다고 괜한 불똥이 튀곤 한다. 나는 골프채를 사면 10년 이상 바꾸지 않는 사람이고, 아내도 거실을 심플하게 꾸미는 사람이라 가구도 많지 않다. 이제는 그동안 갖고 다녔던 많은 물건을 정리했으니 내년 봄, 성당 거라지 세일 때 안 입는 옷만 기부하면 될 것 같다. 기술 자료와 함께 쏟아져 나온 수많은 명함을 보며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 도움을 주고받았었나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도 몇 박스 있었는데, 그것도 꼭 필요한 사진만 남겼다. 8mm 아날로그 캠코더 촬영 테이프도 한 박스나 나왔는데, Costco에 가서 CD로 바꿔 보관할까 하다가 그것도 포기했다.

앞으로의 여생은 소용이 다 한 물건을 버리는 단순한 정리 정돈이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내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그것이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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