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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손형빈의 절대공간: The more you do, the less you get!

나는 성악가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무대가 아닌 욕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내가 청소 일을 한다고 하면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뉠지 모른다는 지인의 충고가 있었다. 그런데도 조심스레 밝히는 이유는 내가 원해서 뛰어든 일이었고, 그 일은 성악가로서의 삶에 적지 않은 보람과 연주자로서 나를 돌아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할애된 지면을 절대공간이라 명명해본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이론이기도 한데, 아마도 이 공간엔 미련하리만치 진솔하고 고지식한 나의 일상과 음악 이야기가 담기게 될 것 같아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악은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 속에 존재한다. 욕실 청소라는 고된 육체노동을 이른 아침 상쾌한 스트레칭 같은 운동으로 치환해 주는 건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와 가곡들이다. 곡조의 숨은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흥얼거리다 보면 음악은 어느새 내가 이어갈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레 유도하며 힘을 실어준다.



대체 욕실 청소와 음악이 무슨 상관있을까 의아해하실 것이다. 여러 집을 방문해 일하면서 욕실의 모습이 집주인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 욕실용품을 많이 쓰는 집, 화려한 수전을 좋아하는 집 등 집 주인은 욕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나타낸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청소를 하다 보면 그 구성원의 식생활 성향에 따라 욕조와 바닥 등에 침전되는 때와 곰팡이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집은 아연(Zn) 성분이 다량 함유된 헤어 제품이나 샤워젤을 사용하고 세척을 게을리해서 붉은 곰팡이가 많고, 어떤 집은 기름 성분의 때가 유독 많아서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할 거라는 추측을 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제각각의 취향과 모습을 갖고 있지만, 욕실 존재의 목적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세신과 청결 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배설이다.

음악도 개인적인 취향과 노력 여하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음악의 목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 큰 노력과 시간을 들여 더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에서 쌓이게 되는 교양과 지식, 이를 많은 사람에게 발표하거나 교육하는 것이다.
욕실의 다양한 비품과 쓰이는 모습이 집의 구성원에 따라 다른 것은 음악이 민속성, 전통과 가치, 시대의 사조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화장실의 역사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다는 점에서 인류가 음악과 함께한 시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아닐까 싶다.
음악을 향유하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때로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역작이 탄생하기도 하고, 수준 미달로 지탄받거나 창작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한다. 반드시 써야 하고 구성원과 공유할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그 사람의 철학과 개념에 따라 절대적이고 철저하게 달라진다는 것이 바로 욕실과 음악이 닮은 점이다.
욕실을 쓰는 집 주인이 어떤 생활 패턴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어떤 집은 너무 지저분해서 방문할 때마다 오염된 공간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고, 반면에 어떤 집은 너무 깨끗해서 아주 작고 세밀한 터치만으로도 마무리가 가능하다.

한 사회에서 음악이 다루어지는 모습도 구성원의 욕실을 사용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용한 욕실 비품을 아무렇게 놔두고, 샴푸, 비누 등 세정제를 거품이 난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하면 매주 방문하여 욕조를 감상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정서적 안정이 큰 만큼 그것을 준비하고 어울리도록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감상으로서의 음악을 경지로서의 음악으로 잘 못 판단하여 내가 어떻게든 해보거나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오염되고 어질러진 욕조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당분간 나는 노래하는 성악가가 아닌 욕조와 변기를 닦고 어메니티를 준비하여 고객들이 기분 좋은 욕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청소하는 성악가다. 무대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신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와 악기의 선율로 연주하는 것도 성악가의 본분이지만, 내 이웃이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공간의 오염된 부분을 도려내어 항상 쾌적하고 아늑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면 그 또한 훌륭한 연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래전 줄리어드에서 나이 지긋한 마에스트로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했었다. 그분은 나만 보면 노래를 제지하고 손가락질하며 “The more you do, the less you get!”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저 양반이 왜 나한테만 저러실까 싶어 얄밉고 서운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수업을 통해 보여준 그분의 헌신적인 교육을 받으며 나는 ‘음악’보다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반세기 가까이 뉴욕 시티오페라, 그랜드 오페라단 등의 지휘자를 역임하며 교육해 오셔서 노련한 눈썰미로 사람을 파악하는 독심술이 대단하셨던 분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배움을 뒤로하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그 말의 의미는 이러하다.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죽을힘을 다하라.”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무대에 설 때쯤이면 죽을힘 다해 얻은 그 무언가가 나를 더 단단하고 곧게 성장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모소 대나무처럼 말이다.



손형빈 프로필

서울장신대교회음악대학원 석사졸업.
미국 Juilliard school of Ext Opera Workshop 수료.
New York Grand Opera단 단원.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정기연주 기획 및 실연.
서울시 열린예술극장 전문연주단체 운영 및 실연.
강남구청 공연단체 운영 및 실연.
스케르쪼앙상블 운영 및 실연.
서울문화재단 예술가교사(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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