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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석 원장의 진학 칼럼]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때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6/02 19:36

심동석 / 아인슈타인 학원 원장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시절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머리도 빡빡 밀고 엄격한 규율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규율을 어기면 선생님께 흠씬 두들겨 맞곤 했으니 당시는 그야말로 선생님은 하늘, 학생은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다.

하루는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산을 깜빡 잊고 안 가져가서 하굣길에 쏟아지는 비를 몽땅 맞아 모자, 교복, 신발, 가방 등 모두 물에 젖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교복과 모자는 말랐는데 신발은 아직도 물기가 흥건했다. 순간 난감해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당신의 명품 수제구두를 선뜻 내주며 신고 가라 하셨다. 나는 마치 아버지라도 된 냥 들뜬 기분으로 학교에 들어섰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생활지도 주임선생님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학생화 외에는 다른 신발을 신으면 안 되는 규율을 어긴 게 이유였다. 손가락으로 나를 불러 세우고는 다짜고짜 나의 무릎 밑을 걷어차고, 엎드려뻗쳐를 시켜서 몽둥이로 몇 차례 엉덩이를 때렸다. 어제 비에 신발이 흠뻑 젖어 신고 올 신발이 없었다는 이유는 변명으로 치부되고 되레 더 매 타작을 당했다. 그리고 신발을 빼앗긴 채 맨발로 교실에 가야 했다.

하루 종일 맨발, 심지어 재래식 화장실 마저 맨발로 다녔다. 그렇게 하루 수업을 마치고 구두를 찾으러 생활지도부에 들렀다. 신발을 돌려 달랬더니 선생님 왈 “그냥 집에 가”라고 했다. 정말 기가 막혔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서도 버스에서도 매우 치욕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매일 걷는 시장 길을 지나치는데 그날 따라 생선 냄새는 또 왜 그리 비릿한지. 게다가 지나가는 여학생들은 깔깔 대고 비웃는데, 집에 가는 길이 천리 만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너무 미웠다.

다음날, 아버지가 구두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선생님한테 빼앗겼다고 하니 오늘 돌려 주실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 아침…… 생활지도 주임선생님이 교문 앞에서 아버지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화가 치밀었다. 선생님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다. 그런데 의외로 아버지는 나를 타이르며 다독거려 주셨다. 선생님한테 그냥 선물한 셈 치라고. 그날 아버지는 용서하신 것이다. 도리어 그 동안 선생님께 감사인사 하지 못한 걸 미안해 하셨다. 다음날 다시 학교를 가서 아버지 구두를 신고 있는 선생님께 ‘아버지가 드리는 감사 선물’이라고 말씀을 전해드렸다. 그런데 방과 후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구두를 돌려주며 미안하다 하셨다.

이 세상에 우리가 용서 못할 사람은 없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용서는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용서를 낳는다는 걸 배웠다.

이제 아버지 연세가 아흔이시다. 비 오는 아침이면 종종 그 구두 사건이 생각나면서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게 용서의 미덕을 가르쳐 주신 아버지…….

▷문의: 703-255-5555, 703-909-9780(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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