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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혼자일 것 행복할 것

이소영
언론인/VA거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집 주소가 ‘서울특별시 ㅇㅇ구 ㅇㅇ동’인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내 부모는 왜 나를 서울에서 낳고 기르지 못해 월세방을 전전하는 신세로 만드셨나?’ 원망도 했었다. 그저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여행 가방 하나 들고나와 오피스텔을 얻는 것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먹고 사는 사정상 강제 독립을 하게 되는 경우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안락한 둥지를 떠난 아기 새가 포식자들이 득실대는 정글에 뛰어든 느낌이랄까. 특히 서울의 미친 집값은 내 존재를 변두리 반지하방 계급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아 더욱 서글프다.

혼술, 혼밥, 혼행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은 요즘. 바야흐로 나홀로 전성시대다. 미디어에 소개되는 싱글라이프는 하나같이 ‘자유’, ‘화려’, ‘여유’의 이름을 빌려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의 공간을 갖고 살림을 꾸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립’이 말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TV 드라마에서 보던 여주인공들의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재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실제 독립생활은 구멍 난 소금 자루를 짊어지고 빗길을 걷는 기분, 자산이 줄줄 녹아나는 기분,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새나가는 기분이다.

<혼자일 것 행복할> (사진)에서 홍인혜 작가는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독립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독립을 결심한 뒤, 자취방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일당백 무임금 근로 계약이 발효된다. 집안 부터 공과금 납부, 세간 장만이 오롯이 혼자의 몫이 되고, 불현듯 밀려오는 무서움은 덤이다.

바깥의 작은 소음에도 예민해지고, 혹시 내가 뉴스에서나 보던 범죄피해자가 되지는 않을까 봐 마음 졸여야 했고, 다세대 주택의 층간 소음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특히 인터넷 설치 기사, 화장실 수리공이 집에 들어올 때는 톰슨가젤의 영역에 육식동물이 들이닥친 것처럼 긴장해야 했다. 생활비는 스스로 벌 수 있고, 형광등 따위도 얼마든지 내 손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어쩔 수 없는 여성으로서 존재의 물리력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불편함 속에서도 그녀의 독립생활은 결과적으로 그녀를 더욱 그녀답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꿈쩍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몸이 독립 후 운동마저 착실히 하는 성실한 몸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정직하고 바라보고 자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작은 그녀의 공간이 우주와도 같은 광활한 가능성을 선사해주었다. 온전히 그녀의 취향으로만 가득한 우주 속에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이뤄가고 있다.

혼자 살면 외롭지 않을까? 배고픔이 위장의 허기라면 외로움은 관계의 허기. 때로 가득 찬 위장보다 허기가 되레 뿌듯하고 감미로울 때가 있는데, 외로움도 그와 같다. 관계의 과잉으로 영혼이 부대낄 때(마치 과식처럼), 타자를 탐닉하느라 자아를 잃었을 때(마치 식탐처럼), 우리는 사람을 굶어야 한다. 고독이라는 처방을 받아야 한다. 그녀의 공간은 관계에서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홀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캔맥주로 목을 축이며 방해받지 않고 채널 독점권을 가질 수 있는 밀실이다.

혼자여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혼자여서 행복하기도 하다. 혼자 사는 인생은 매일매일 그 맛을 바꾸며 감각을 일깨운다. 달았다 하면 쓰고, 썼다 하면 시다. 애초에 그녀가 안온한 삶을 떠나 홀로서기를 갈망했던 그 이유, 만사가 새삼스러운 삶이 지금 여기 있기에 외로움 따위는 가볍게 즐길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혼자 사는 삶이 애니메이션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낭만을 꿈꾸겠지만 어차피 낭만이라는 것은 찍어본 적 없는 한 장의 사진일지도 모른다. 특정 장면으로 구체화한 하나의 소망 말이다. 결혼하든 하지 않든, 한 집에 누구와 함께 살든, 인생은 결국 일인용이다. 나는 나와 반려하며, 나를 양육하며, 나를 살아내는 삶. 그것이 진짜 독립생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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