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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기구한 도시 '홍콩'

신비로운 땅 홍콩. 행정구역상 중국이라고는 하지만 대만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처럼 여겨진다. 100년 동안 영국 식민지배를 받다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는 복잡한 역사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운지 모르겠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시기를 전후해 홍콩은 그야말로 대공황 그 자체였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중국사람이지만 100년 동안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식 문화, 정치적 영향을 받은 홍콩주민들은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중국 치하를 피하고 싶었던 많은 지식인이 영국, 캐나다,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했고, 정체성 혼란에 빠진 사회는 깊은 우울을 겪는다.

이 혼돈의 한 가운데를 재치있게 담아낸 소설이 있다. 찬호께이 작가가 쓴 <13.67>(사진)이다. 홍콩의 중국 귀속을 원하던 마오주의자와 경찰 사이의 격돌이 벌어진 1967년부터 홍콩이 반환된 1997년을 거쳐 2013년에 이르기까지 6개의 범죄사건을 시대 역순으로 훑어가는 이야기다. 뛰어난 추리 능력을 갖춘 홍콩 경찰총부의 전설적 인물 관전둬, 그의 오랜 파트너 뤄샤오밍은 까다로운 사건들을 척척 해결하며 홍콩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첫 번째 단편소설 ‘흑과 백 사이의 진실’은 관전둬가 경찰총부에서 퇴직한 뒤 말기 암 환자로 혼수상태에 빠진 2013년이 배경이다. 파트너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뤄샤오밍은 특수장치를 이용해 관전둬와 의사소통하며 대기업 회장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세 번째 단편 ‘가장 긴 하루’는 홍콩이 반환되던 97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관전둬는 반환 한 달 전 은퇴한다. 소설 속에는 세 가지 사건이 등장하는데, 뒤에 가서는 결국 하나의 큰 사건으로 압축된다.

마지막 단편 ‘빌려온 시간’이 가장 인상 깊다. 배경은 67년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끌어온 소설은 마지막 단편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고 화자 ‘나’가 등장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들은 본명 대신 아칠 선배, 아삼 후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형사와 ‘나’가 힘을 합쳐 어렵사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풋풋해 보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왜 시간을 거꾸로 내달리는 독특한 구조를 택했을까? 여섯 편으로 나뉘어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개별 사건을 잇는 큰 맥락은 무엇일까? 소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콩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회, 정치적으로 격변을 겪어온 홍콩에서 경찰로 살아가는 관전둬의 모습은 1967년과 2013년 사이 크게 변한다.

홍콩이 영국령이라는 사실은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다.중국은 시시때때로 홍콩 침공을 노렸고, 급기야 67년 발생한 국경 분쟁으로 홍콩 경찰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시기에 관전둬는 홍콩 경찰로서 자부심과 의욕이 절정에 달했다. 이후 70~80년대 홍콩은 경제특구로서 중국 수출품의 방출구 역할을 하게 되었고, 금융과 은행 중심지로 부상한 홍콩은 더욱 부강해진다. 이때가 홍콩 경찰의 황금기였다. 일 잘하는 경찰을 향한 주민들의 신뢰도는 하늘을 찔렀다. 문제는 97년 반환 시기가 돌아왔을 때다. 당시 경찰은 순수하게 범인을 잡는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사회 혼란 속에 각종 시위가 계속되자 경찰이 정치적인 일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관전둬의 경찰 은퇴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경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홍콩은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더 큰 경제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온전히 중국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영국도 아닌 혼란스러운 홍콩의 정체성은 여전한듯하다. 이제 홍콩은 정치, 입법, 사법체제 유예가 끝나는 2046년까지 1국가 2체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 소설은 2013년 혼탁한 모습과 1967년 어지러웠던 시절이 서로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뱀 같은 구조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도대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운명적 탄식을 하게 된다. 영국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관전둬가 세상을 떠난 이후 남은 뤄샤오밍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지난한 식민지 시민의 삶을 끝내고 모국 중국에 완전히 소속될 수 있을지.


이소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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