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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초기한인교회의 역사(23)

벧엘교회 6대 진용태담임목사는 2009년 4월 5일에 취임, 2014년 5월 25일 5년만에 사임해 ‘벧엘 5세대 문화’를 마무리했다.

‘벧엘 5세대 문화’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필자를 포함해 벧엘교인들에게 많은 영적인 도전을 준 문화다. 그 도전이 주어질 당시에는 많은 벧엘 식구들이 고통을 인내하고 다윗왕처럼 묵묵히 또는 소리질러 기도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벧엘 식구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 이가운데 하나님의 벧엘을 향한 분명한 뜻이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우리는 그 뜻을 완전히 알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벧엘교회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증거다.

필자는 “벧엘교회 40년을 되돌아보며”라는 제목의 칼럼을 지난 9월 14일주부터 매주 써 오고있다. 23주 그리고 반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외부의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목회자 교인 일반인들이다. 큰 관심을 보여준 벧엘 식구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분들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 제안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제안들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이 칼럼의 글이 다름 아닌 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수용할 수 없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 칼럼 첫 호에서 이 칼럼을 10여회 걸쳐 연제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쓰다가 보니 너무 길어진 감이 있다. 이 칼럼에서는 벧엘을 거쳐간 임시당회장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벧엘교회는 지난 40년간 6명의 담임목사를 맞이한 사이 9명의 임시당회장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내부에서 영입한 2명의 임시당회장까지 합하면 모두 11명의 임시당회장이다. 임시당회장은 당회장인 담임목사가 부재시에 당회장을 대행하는 기능을 갖지만 어느정도 제한적이다. 임시당회장이 부재시에는 규약 제 2장 제6조 2항 “당회장 유고시에는 서기가 회의를 관장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당회 서기가 당회 제직회 등 모든 공식 회의의 사회를 관장했다. 당회는 김상복목사의 사임 이후 부목사였던 손인식목사와 송영선목사를 연이어 임시당회장으로 임명했다. 송영선목사가 사임 한 후부터는 당회는 외부로부터 임시당회장을 영입했다. 임시당회장의 목회는 여러면에서 벧엘교회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설교와 청빙과정을 통해서 그런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3년 2월 4일 송영선목사가 사임하고 1주일만인 2월 28일, 당회는 한국에서 오랜 동안 선교사로 헌신했던 인도아목사(Dwight Linton)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해 첫 임시당회장의 역활을 감당하게 했다. 인목사는 당시 미장로교 교단 PCA에서 한국교회 조정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교회 리더십은 물론 많은 교인들이 인도아목사님으로부터 많은 영적인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인목사님은 두달만에 사직하고 아틀란타 교단본부로 돌아갔으며 곧 이어 1993년 5월 23일 오덕교목사가 임시당회장직을 맡았다. 오목사는 당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목사는 3개월간 시무하면서 많은 교인들을 심방했다. 박사학위를 마친 오목사는 3개월만인 8월 15일 사임하고 한국 합신신학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1995년 6월 11일 2대 김영진목사가 사임한지 1주일만인 6월 18일 당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한국목회학박사과정의 디렉터로 있는 이호영목사가 임시당회장으로 부임했으나 3개월만에 사임하고 1995년 10월 8일 이 지역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한 배기주목사가 부임했다. 그러나 배목사도 5개월만에 사임, 임시당회장이 공석중있던 1996년 5월 18일 벧엘교회는 이호영목사를 3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그러나 이호영목사는 부임 2년 만인 1998년 6월 14일 사임했으며 2000년 8월 20일 4대 이순근목사가 부임 할 때까지 2년 동안 임시당회장들이 목회를 감당했다. 서부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한 서재승목사를 1997년 2월 7일 임시당회장으로 영입했으나 한달만인 1999년 3월 9일 사임했다. 그리고 2개월만인 1999년 5월 16일 펜실바니아주립대 철학과 교수며 피츠버그한인교회 협동목사였던 박일철목사가 부임, 5개월간 시무하다 1999년 12월 26일 사임했다. 그리고 덴버한인교회에서 은퇴한 이희봉목사가 2000년 1월 9일 부임해 2000년 8월 20일 이순근목사가 취임 할 때 까지 8개월간 시무했다.

2007년 12월 23일 이순근목사가 사임한 후 2008년 6월 1일 예종학목사가 2개월간 시무하다가 두달만인 7월 31일 사임, 그동안 여러 차례 벧엘교회 자문역을 맡았던 와싱턴중앙장로교회 이원상담임목사가 2008년 2월 1일 임시당회장으로 부임해 2개월간 시무하다가 2000년 8월 1일 재부임해 진용태목사 청빙과정을 도왔다. 이원상목사는 진용태목사가 2014년 5월 25일 사임한 후에도 임시당회장을 다시 맡아 6대 백신종목사가 취임할 때까지 임시당회장으로 봉사했다. 이원상목사는 본교회 시무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벧엘교회를 위해 많은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벧엘교회가 이목사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목사가 벧엘에 몸담고 있는 동안 목회자의 겸손이 무엇인가를 몸소 체험했다.


허종욱 /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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