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황훈정 칼럼]아마조네스

여성의 유방을 의미하는 마조스(Mazos)란 단어에 반대의 뜻을 갖는 접두사 에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마조네스다.
종족의 생물학적 유지를 위한 짝짓기가 일년에 딱 한 번 허락되지만, 그외의 어떠한 친밀한 접촉도 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평생 말을 타고 활을 쏘아야 했으며, 태어나자마자 오른쪽 가슴이 제거된 여자 아이들은 용맹스런 여전사가, 그리고 후대에까지 이름을 드높인 불멸의 전설이 되었다.

평상시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기를 모았던 일본 출신 연예인 사유리가 최근자발적 비혼모가 된 것이 화제인 모양이다.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고, 페미니즘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문제는 제도적으로나 관습적으로 넘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기 떼문에 그녀의 이런 과감한 결정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듯하다.
내 나이 서른 즈음, 모든 면에서 롤모델이 되어주었던 여자 선배의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움찔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후 그녀의 재혼 소식을 들었는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그녀가 사귀는 남자는 다름 아닌 연하의 총각으로 그녀의 훌륭한 인간 됨됨이로 보아 상대와의 나이나 입장 차이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의 새출발을 열렬히 응원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온순한 성품의, 그리고 나의 선배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내가 그녀의 아이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편부, 편모 가정, 아예 부모 둘다 없는 소녀/소년가장, 독신, 동성애 부부, 입양가정, 이혼자들이 각자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가정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적인 모습(보통의 혼인관계에서 부부와 혈연으로 맺어진 자녀로만 구성된)에서 사뭇 편차가 커보이는 가족들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부재 외에는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가족공동체였건만, 왜 그녀의 가족을 비정상적인 가정의 범주로 굳이 구분 짓고, 단정적으로 그녀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고 믿는걸까.

이런 사회적 편견은 모든 것에서 당차고 씩씩했던 선배를 주눅들게 했으며 계부와 다른 성씨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을까 전전긍긍하다 결국은 전 남편 집안을 상대로 지난한 법정 소송을 계속할 수밖에 없았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의 새로운 성씨를 가족관계부에서 갖게 된 후에야 비로소 힘든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선배 언니의 고백을 들었을 때 눈이 새빨개질 때까지 함께 울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건대 그녀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그토록 열심히 뭔가를 위해 싸웠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전통의 시대가 쌓아놓은 굴레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그녀는 자식을 모질게 내친 친아버지 대신 세상이 인정하는, 번듯한 의붓 아버지로 자식들의 후견인을 세웠기 때문이다.

인간은 출생과 성장을 통하여 자신의 성적 아이덴티티를 찾아간다. 그리고 노화 과정을 겪으면서 남성, 여성의 확연한 구분보다는 인간 공통의 바운더리 안으로 편입되는 부분이 많아지며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 둘을 지금까지 키우면서, 가장 남편에게 감사하는 순간들은 다름 아닌 나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자식들의 중요한 이벤트나 미래를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더 나쁜 결과가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세상은 복잡해지고,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려는 용감한 엄마들이 늘고 있다.
그녀들의 담대한 결정에 열렬한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지만, 동시에 그런 그녀들과 그녀들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내는, 수많은 타인들의 다양한 이해와 도움이 무엇보다 요구되어진다.
하늘 아래 곡식 한톨이 온전해지기까지 셀 수 없는 천둥과 벼락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많은 일들이 부모라는 가장 개인적인 관계로 엮인 사람들의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게 된다면, 이 사회의 누군가로부터 대신, 제대로 채워져야 한다.

아마조네스의 여인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희생하면서 부족을 이끌었지만 더 이상 우리는 여성이어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의 혜택과 기쁨을 그들로부터 뺏고 싶지 않다. 도리어 강력한 연대와 뒷배가 되어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


황훈정 작가 / 전 치과의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