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테크놀로지 스트레스
50대 후반의 A씨는 최근 휴대폰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폰 주소록에 저장돼 있던 다수의 전화번호를 잃어버렸다. ‘백업 과정에서 뭘 잘못했나봐요’라는 푸념에 ‘나도 그런 적 있다. 그래서 휴대폰 바꿀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수긍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공감대는 IT 업종에 종사하는 B씨 때문에 쉽게 무너졌다. ‘새로운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구글 어카운트가 아니라 폰 자체에 저장 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주소록 앱을 사용하면 그런 불편은 겪지 않아도 된다'라는 설명에 A씨와 지인들이 느낀 것은 ‘세상 참 좋고 편해졌구나’라는 안도가 아니라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것이냐’라는 부담감이었다.젊은 층을 비롯한 ‘똑똑한 전자기기' 팬들에겐 TV나 냉장고가 얼마나 진화했을지, 집안 조명과 시큐리티 카메라에는 어떤 기능들이 더해졌을지가 흥미진진하겠지만 A씨의 반응은 시들하다. 그는 “20여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가전제품을 사드릴 때 늘 ‘보단(버튼)이 적은 걸 사라'고 강조 하셨다. 이제 내가 그런 세대가 된 것 같다"고 서글퍼했다.
놀라운 기능을 가진 새 전자기기는 비싸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완화로 대다수가 구매할 수 있을 때쯤엔 이미 신형 모델이 나오고도 남는다. 가정용 전자제품이 소득층 격차의 잣대 역할을 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신형기기가 출시되는 속도가 무섭도록 빨라지고 있어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 도태되는 무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경제적인 격차에 신기술 문맹이 더해지면 사회계층 분리의 골은 더 깊어진다.
구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선 수도권 지역은 21세기인데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20세기 후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순적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제3세계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커다란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민낯이 드러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마주하는 노년층과 극빈층의 얼굴이 과연 어떤 것일지.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제발 누군가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길 바란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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