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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김홍도를 알아 본 大家

'18세기 조선예술' 그의 화폭에 담겼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91)은 여든 가까운 장수를 누리며 그가 살았던 18세기 조선 화단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다.
시 잘 짓고 글씨 빼어나며 그림 좋아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꼽혔다.
당대 중국 화론은 물론 서양 그림에까지 안목을 넓혀 겸재 정선(1676~1759)과 단원 김홍도(1745~1806?) 등 걸출한 서화계 인물들 작품을 제대로 평한 감식안으로도 유명하다.


27일부터 내년 2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표암 강세황의 시.서.화.평'은 표암을 화가로서 주로 다루었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그의 예술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첫 전시로 뜻이 깊다.




강세황은 일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처럼 있어 아호를 표암(豹菴)이라 했다던가, 서른 두 살부터 환갑 때까지 초야에 묻혀 있다가 말년에 벼슬길에 나아가 중국에까지 이름을 높인 기인다운 풍모가 여럿 전해온다.
세상일에 매달리지 않고 자의식이 충만한 삶을 즐겼던 그의 내면은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蒼松不老)'는 절명구(絶命句) 한마디에 담겨 있다.


"취하지 않으면 미칠 수 없고/미칠 때에는 자못 시를 짓지/(…) 스스로 감상하고 스스로 인정할 뿐/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네"는 표암이 마흔 두 살 때 지은 시로 풍류와 흥취를 알았던 그의 예술혼을 엿보게 한다.


전시는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짜여졌다.
표암의 자화상과 초상화를 다룬 '나는 누구인가', 산수.인물과 서화를 중심으로 한 '남종 문인화의 토착화', 시.글씨.도장을 모은 '취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 사군자와 초충화훼를 돌아본 '탈속.고아의 세계', 문인예술가로서 나눈 폭넓은 교유와 서화비평을 엮은 '술 한 잔에 시 한 수', 조선조가 꼽는 명문가였던 표암 가문의 필적과 장서를 소개하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다.
초상 3건, 글씨 40건, 산수인물 30건 등 모두 1백79건의 작품과 자료가 나와 이제까지 표암을 다룬 전시로는 가장 크고 충실함을 자랑한다.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영통동구(靈通洞口)'는 거대한 바위 사이를 말 타고 가는 여행객을 그린 것으로 독특한 채색과 인상주의적인 묘사로 그가 서양화의 원근법을 빌려오지 않았나 짐작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회화사의 한 문제작이다.


특히'강세황 칠십일세상'은 초상화가로 이름난 이명기(李命基)가 그렸다고 짐작돼온 걸작으로 그동안 표암이 죽은 뒤 추모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초상화 제작 일지인 '계추기사(癸秋記事)'가 발견돼 조선시대 초상화 제작 과정을 상세히 전해주는 귀한 자료 발굴의 쾌거를 올리게 됐다.
'계추기사'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1783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1756년 생인 이명기가 정조의 어명을 받아 열흘만에 그리고 다시 아흐레 동안 배접과 궤 제작 등을 거친 것으로 비단 10냥, 화원 사례비 10냥 등 지금 기준으로 4백만 원쯤 되는 50냥이 들었다.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계추기사'는 특히 족자를 만드는 표구 과정이 자세히 서술돼 있어 우리나라 표장 기술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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