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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포커스> 우리 타운의 오울드 타임어 이강석교수

이강석 교수는 1937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 70번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출판업을 운영하던 이기영씨와 최영숙씨로 슬하에 3남 3녀로 이교수는 막내딸로
오빠 둘, 남동생이 있었다.
종로 방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수도여고를 거쳐 홍익대학교
미술학과를 58학번으로 진학했다.

학생회에서는 총무를 맡았고 , 여성자치회에서는 회장도 역임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대학 2학년 때는 국전에도 입선했고 그후로도 여러 번 대회에 입상되는 실력을 과시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담임선생님이 이강석의 그림솜씨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그래서, 교실 게시판에 항상 이강석의 그림을 걸어놨다.

선생님의 이런 관심이 이강석의 그림 그리기를 더욱 부추겨주었다.

대학생활 때, 이강석의 그림세계에 특히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당시 홍대교수들이었던 옥사(玉史) 천경자(千鏡子,1924~),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 월전 김옥진,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4~2001) 화백 등이었다.

천경자씨에게는 "채색화"에 영향을, 청전과 월전에게는 "산수화"를, 운보에게는 "인물화"를.
당시에 주류였던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서양화를 위해 미국으로의 유학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결혼도 못한 처녀가 어디를 "가느냐"였다.
심적 갈등이
집요하게 교차됐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은 참을 수 없어 콜로라도의 대학원(Boulder)의 진학을 위해 1967년 여름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가 29의 나이였다.

UC Graduate 미술과에서 "조각", "오일페인팅", "퇴러", "드로잉(drawing)", "판화"등 서양의 기법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저편의 세계를 이미 섭렵한 이강석에게는 차이점의 발견일 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언어의 극복은 다른 차원의 도전장이었다.
전공에 매진하면서 영어에도 전력했다.
다행히, 암기력이 좋아 외었던 단어나 문장들을 그 다음날 몽땅 까먹는 일은 없었다.

여름방학동안에는 아르바이트도 해야했다.
인종적 편견이 여전히 잔존했다.
그래서 겨우,
버스걸(Bus girl)로 취직하였다.
귀한 막내딸로만 성장한 이강석에게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늦게 까지 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기만 했다.

어느 날, 대학교에 렉처어(Lecturer)로 방문했던 프랭크를 만나게 된다.
당시, 프랭크는
원자학(atomic energy) 박사로 그 분야에서 권위자였고, 육군대령으로 워싱톤의
펜타곤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 국방자문위원으로 전국을 순회하는 중이었다.

우연한 만남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UC를 졸업한 이 여사는 콜로라도 스프링의 JCPenny 매장에서 응용미술분야와 관련된 "Display Advertizing" 매니저로 사회에 공식적인 첫발을 내딛는다.
그후, 능력을 인정받아 와이오밍, 콜로라도, 캔사스, 뉴멕시코, 택사스, 아리조나등 6개 주를 관할하는
"district manager"로 진급하게된다.
당시로서는 동양여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일로 놀라운 승진이라고 한다.

순조롭고 행복했던 결혼생활에 안타까운 소식을 이 여사는 듣게된다.
남편인 프랭크가 위암판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프랭크는 장성인 소장이었다.
이 여사는 고심 끝에 JCPenny의 고위직에서 퇴직하여 남편 곁에서 수발할 것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고, 프랭크 역시 부인과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퇴역을 결정했다.
둘은 서로에게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곧 프랭크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후, 이 교수는 10년을 독신으로 지내게된다.
계속 진행해왔던 전공에 더욱 매진하는 기간이었다.
경영학을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고 MBA도 이기간에 취득했다.
그리고, 이 교수는 교회에서 짐(Jim)을 만나게 된다.
짐은 이 교수와 함께 "Griefwork Shop"부서에 같이 소속되었던 독신으로 부인을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분야인 "Organization Development"에서 철학박사인 짐은 이 교수와 함께 서로 공유시키면 대조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두 사람은 재혼했다.

이교수는 콜로라도 대학교(볼더 &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미술학 교수로 다년간 재직했고 그외 여러 대학에서도 교수로서 활동했다.
이 교수는 현재 "Sheppard Art Institute and World Culture Center"을 설립해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순(耳順)나이를 넘긴 이강석교수는 남은 여생에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고 한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배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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