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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맨발

노재원/시카고지사 편집국장

1994년 초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란 곳에 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400km 가량 떨어진 대서양 해변 유명 관광지다.

당시 한국의 한 프로축구팀이 그 곳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무살 안팎의 그 지역 청년 10여 명이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행색은 초라했다. 제대로 된 유니폼은커녕 대부분 슬리퍼와 헤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한 두 명은 맨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심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의 숨은 진주를 기대했던 감독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던 그는 "테스트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프로선수가 되고 싶어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온 젊은이들이다. 기회라도 한 번 갖게 해 달라." 입단 테스트를 주선한 현지 동포의 부탁에 감독은 "그럼 우리 선수들 연습경기에나 뛰게 해보라"고 선심 쓰듯 지시했다.

청년들은 그제서야 안도하며 조그만 손가방에서 낡은 축구화를 꺼내 신었다. 하지만 감독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합격 여부를 가려줄 판정관이 없는 무의미한 경기를 마친 청년들은 단 한 명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따금 '은빛 바다'라는 뜻을 지닌 마르 델 플라타의 반짝이는 파도와 아름다운 해변을 추억할 때면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던 청년들의 뒷모습도 함께 생각나곤 했다.



최근 마르 델 플라타와 아르헨티나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신발업체 '탐스 슈즈(TOMS shoes)'의 커피사업 진출 뉴스 때문이다. 탐스 슈즈는 일대일(One for One) 기부라는 독특한 비즈니스 방식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신발 한 켤레를 팔 때마다 맨발로 살아가는 개도국 어린이 1명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고 안경 하나 팔 때마다 개도국 주민들의 안경과 녹내장 수술 비용을 지원한다. 이 회사가 이번엔 '커피 한 봉지를 팔 때마다 개도국 주민 한 명에게 1주일치 맑은 식수를 공급하겠다'며 '탐스 로스팅' 설립을 발표한 것이다.

탐스 슈즈의 출범은 아르헨티나가 계기였다. 2002년 '어메이징 레이스'란 방송에 누이와 함께 출연, 아르헨티나를 찾았던 20대 미국 청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3년 후 아르헨티나를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 변두리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지역 어린이 다수가 신발 없이 지내는 것을 본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2006년 탐스 슈즈를 창업했다. 남미 사람들이 즐겨 신는 알파르가타스(alpargatas)라는 가볍고 굽이 낮은 신발을 만들어 팔면서 판매한 숫자만큼 개도국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선물했다. 지금까지 기부한 신발이 1000만 켤레, 시력을 되찾은 이가 2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맨발'을 본 후 누군가는 자신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다는 불쾌한 감정을 느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비슷한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인 두 사람의 차이를 단순히 시간과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맨발의 이웃을 보고 다른 반응을 나타낸 두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굽이마다 무엇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자문한다. 이익을 좇아 세상과 사람을 수단으로만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기심에 빠져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신발이 없어서, 눈이 잘 안 보여서,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처럼 여전히 많은 이들이 더불어 사는 삶의 울타리 밖에 서 있다.

넓고도 좁은 이 땅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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