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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힐러리 클린턴과 네덜란드 축구

노재원/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정치인들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편이다. 그들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달콤하고 번지르르한 내용일수록 더욱 그렇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은 너무 흔하고 의례적이다.

하지만 얼마전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 출간 기념 행사를 위해 시카고를 찾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말은 정치인의 언어를 곱씹어보게 했다.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그는 출마와 관련, 즉답 대신 "나설 것인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뛰어넘는 어려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6 대선에 출마하려는 이들은 '국민과 함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나눌 수 있는 지극히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 역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비전은 무엇인가, 과연 그곳까지 국민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라는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의 말은 정교한 정치적 수사(修辭)일 수도 있다. 남편 빌 클린턴과 함께 백악관을 나올 때 수백만달러의 빚을 지닌 빈털터리로 생계형 강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현재 이들 부부의 자산은 1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허언(虛言) 속에서도 골라낼 뼈가 있는 것처럼 그의 말 속에 자주 등장하는 리더십과 비전은 작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리더십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리더십이 정치. 경제 등 주요 분야의 대표나 지도층에만 해당되는 감투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사회나 학교가 요구하는 리더십도 회장이나 각종 클럽의 대표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리더십은 다양했다. 대단한 업적이나 경력 못지 않게 작은 성취도 리더십으로 표현될 때가 많았다. 소규모 모임이나 파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물론 참여하는 행위도 일종의 리더십이었다. 대소경중(大小輕重)을 따지기보다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리더십의 또 다른 얼굴은 비전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는 이미 리더가 아니다. 과거의 성과로 일시적인 리더는 될지언정 진정한 리더가 될 수는 없다. 리더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어도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을 심어줘야 한다. 현재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함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 강대국의 위치를 지키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모든 구성원의 리더십과 비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리더십과 비전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1970년대 이전까지 축구는 전통적인 WM 포메이션과 4-2-4가 대세였다. 공격, 미드필더, 수비로 나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1974년 월드컵서 네덜란드는 전원공격, 전원수비라는 획기적인 개념의 축구를 선보였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후 네덜란드식 토털사커는 현대 축구의 근간이 됐다. 팀에 따라 4-4-2, 3-5-2, 4-2-3-1 등 여러 가지 전술을 구사하지만 공수의 구분 없는 압박축구는 기본이다. 네덜란드 축구가 보여준 리더십과 비전이라 할 만하다.

클린턴 전 장관은 리더십과 비전 이외에 타협이라는 단어도 화두로 던졌다.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한 후 국무장관직을 수용한 그는 '적과의 동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민주주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갈등과 반목 대신 뜻을 모으고 타협에 담긴 나쁜 의미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 전 끝난 한국 지방선거서 당선된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상대 진영에 부지사와 업무인수위원장을 제의해 주목을 끌고 있다. 두 당선자가 보여주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리더십과 비전에 바탕을 둔 과감한 도전 의식에서 비롯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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