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J네트워크] '명량' 보다 '칼의 노래'

노재원/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鳴梁)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화제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500만 관객 동원 기록도 세웠다.

때마침 지난 봄부터 이순신 이야기를 다룬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세 번째 읽고 있다. 정유란 이후 백의종군 한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기까지를 다룬 '칼의 노래'는 유려한 문체와 사유의 행간이 인상적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첫 문장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도입부처럼 흡인력이 강하다. 여러 차례 반복해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구절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미문(美文)은 처연하지만 비장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진란 발발 이후 육군과 달리 바다를 지배하던 이순신이 모함으로 투옥된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 조선 수군 대부분을 잃고 자신 역시 살해된다.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적의 수급(首級)을 다루는 태도다. 원균은 상부 보고와 자신의 치적을 위해 적의 머리를 베는데 집착했다. 반면 이순신은 부하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수급만 정리하도록 했다.

원균이 형식적이고 눈치를 보는 장수였다면 이순신은 실질적이고 소신 있는 리더였다. 이순신은 전쟁 막바지 명나라 장수 진린이 "장수의 용기는 사졸의 용기와는 다른 것이오. 수급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소"(332쪽)라며 왜군의 퇴각을 용인하자고 했지만 거부한다. 국토와 백성을 유린한 적을 단 한 명도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는 뛰어난 장수를 넘어 영웅의 면모로 다가온다.

이순신의 이 같은 태도는 선조의 유시(諭示)에 대한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선조는 '볼품 없는 전력의 수군은 해전을 포기하고 육군과 합쳐라'라고 지시하지만 '비록 외롭다 하나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아온 즉'(75쪽)이라고 장계(狀啓)를 올린다. 그리고 열두 척의 배로 명량에서 적을 마주한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78 79쪽)고 독려하고 스스로에게도 '물러설 자리는 넓었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었다'(91쪽)고 되뇌인다. 이순신은 '물은 늘 거칠었고 물은 노에 저항했다. 배는 그 저항의 힘으로만 나아갔다'(247쪽)며 어떤 상황도 난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친 파도와 끝없이 덤벼드는 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이순신은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이었다. 출옥 직후 영의정 대사헌 판부사들이 직접 위문하지 않고 종들을 대신 보내고 그 종들조차 얼굴만 비치고 돌아가자 그는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14쪽)고 고백한다. 이순신은 군율에 어긋난 행위와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징치했다. 징모(徵募) 부정과 군량미 빼돌리기 등 부패한 지방 관리들 뒤에는 중앙 고관대작들의 비호와 결탁이 있음을 꿰뚫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28쪽)고 위무한다.

당당했던 이순신의 곧음이야말로 전력의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4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 눈이 절로 우러러 보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칼의 노래'를 펼치고 덮을 때마다 노량에서의 마지막을 맞은 장군의 칼이 지금도 징징징 울고 있음이 전해온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