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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필요할 때 도움 못주는 한인 에이전트

노재원/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지난 주 개인적인 용무로 타주를 찾았다가 속된 말로 산전, 수전, 공중전을 한꺼번에 겪었다. 일정을 모두 마친 토요일 저녁. 늦은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출발하려고 자동차 시동을 켜는데 엔진이 작동하지 않았다. 연거푸 다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배터리와 케이블을 교체하는 등 제법 비용을 들여 정비를 마쳤는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휴대전화도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더니 급기야 전원이 나갔다.

마침 주차장 관리직원이 보이길래 도움을 요청했다. "어쩌면 점프 케이블이 있을지 모르겠다"던 그는 잠시 후 휴대용 기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인근 호텔 1층 투숙객이 진땀을 흘리는 우리를 지켜보다가 자신의 SUV를 끌고 와서 점프 케이블을 연결해보고 스타터를 막대기로 두드려보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한 레스토랑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배터리 충전을 위해 전원 콘센트에 전화기를 연결했다. 그 사이 종업원 두 명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기술자를 찾아보겠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자동차는 멈추고 휴대폰은 안 되고 게다가 웬만한 업소는 모두 문을 닫은 주말 저녁. 낯선 소도시에서 한꺼번에 찾아온 낭패였다.

보험사 전화 자동응답기에선 메마른 기계음만 지겹도록 반복될 뿐이었다. 집으로 오는 걸 포기하고 숙소로 들려고 했으나 주변 호텔은 모두 매진 상태였다. 긴급 도로서비스와 연결이 되었고 긴긴 기다림 끝에 자정이 가까워서야 견인 차량을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또 함흥차사. 겨우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에 온 견인 차량을 타고 단 한 개의 방만 남았다는 호텔에 도착,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긴급 도로서비스, 토잉업체, 보험사와 다시 연락을 시작했다. 토잉은 보험 커버가 안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험 에이전트에 연락했지만 제때 연결되기는커녕 결론은 직접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였다.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다. 대신 대표전화가 안내해주는 본사로 연락해야 한다. 고객과 서비스 대행 업체와의 클레임 문제도 우리는 간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카고로 돌아와 전화 통화를 한 보험 에이전트 대표도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마치 사고는 자신들의 근무 시간에만 발생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실 많은 한인들이 한국인 에이전시를 찾는 이유는 곤경에 처했을 때 그나마 의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 때문일 거다. 그러나 그 기대는 허상인 듯했다.

하지만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소득이다. 호텔에 있다가 맨발로 뛰어나와 어려움에 처한 낯선 사람을 도와준 브렛, 그는 나중에 일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안부를 물어오기까지 했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기술자를 찾아주려 분주히 움직이던 레스토랑 여종업원들, 로비에서 휴대전화 충전을 하면서 잠시라도 편히 쉬라고 커피를 건네던 호텔 직원, 시카고 남부 출신이라며 우리를 고향사람처럼 반가워하던 자동차 수리업체 직원 션, 애초 차량 정비가 잘못되었음을 증언해주겠다던 시골 마을의 기술자 알렉스 등 이름도 성도 낯선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고된 여정이었지만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안다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긴 계기였다. 한인들이 서로를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서로 힘이 되어주는 그런 공동체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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