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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스마트폰 없이는 못사는 세상

노재원/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한 토막이다. 숲속에 살던 원숭이 앞에 어느 날 신발장수가 나타나 꽃신 한 켤레를 내놓았다.

공짜라는 말에 처음엔 의구심을 보이던 원숭이는 신발장수의 말재간에 넘어가 결국 꽃신을 받았다. 폭신폭신한 꽃신은 원숭이에게 그만이었다. 돌부리에 채어도 발이 아프지 않았고 나무를 탈 때도 편했다. 꽃신이 해질 즈음 다시 찾아온 신발장수는 이번엔 공짜가 아니라 도토리 몇 개를 요구했다.

원숭이는 '그 정도 쯤이야' 하며 도토리를 주고 꽃신을 샀다. 몇 달 후 꽃신이 닳아 마음대로 걷지도 못하게 된 원숭이는 신발장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이윽고 애가 타던 원숭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신발장수는 "새 신을 갖고 싶으면 도토리 한 가마니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이미 꽃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원숭이는 신발장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원숭이는 신발장수의 노예 아닌 노예가 됐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이 차례로 갤럭시 노트4와 아이폰6 등을 선보였다. 화면은 넓어지고 카메라와 앱 등 각종 기능도 개선되고 확대됐지만 무게는 더 가벼워진 첨단 제품들이다.

얼마 전 2년 정도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새로 교체한 처지여서 이들 제품의 성능과 가격 등에 눈길이 갔다. 화면 크기는 어떤지, 두께나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카메라의 화소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내 스마트폰과 비교하며 하나 하나 살펴보게 됐다.

전화와 문자메시지 이외에 특별히 사용하는 것도 없으면서 4년 전 '2년 계약, 스마트폰 무료'라는 유혹에 빠져 이제는 2년마다 새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신발장수의 감언이설에 속아 어느 새 꽃신 없이 살 수 없는 원숭이 신세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처량함마저 든다.

"원래 스마트폰은 2년 정도 사용하면 조금씩 문제가 생겨 바꿔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2년 주기로 주요 제품을 출시하는 이들 업체와 2년 단위 계약을 하는 이동통신사의 영업 전략에 끌려다니는 꼴이다. 전원 스위치에만 문제 있었을 뿐인 스마트폰을 수리하기보다 이참에 바꾸자고 판단한 것이 그렇다. 새 것에 대한 욕망이나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심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화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훗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들의 몫을 남용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휴대폰을 사용한 지 10여년, 스마트폰은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활 필수품이 됐다. 지난 달 하순 타주에서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 휴대폰은 거의 유일한 문제 해결 수단이었다. 토잉 업체는 물론 보험사, 자동차 수리업체, 호텔 예약에 이르기까지 휴대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혹시 휴대폰마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며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다.

사실 예전엔 휴대폰 없이도 큰 문제 없이 살았다. 불편은 했지만 일상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외려 더 많은 여유를 누렸던 것 같다.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며 다방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던 일은 설렘이었다. 또 탁자 위에 성냥개비로 탑을 쌓거나 책장을 넘기던 시간은 덤으로 누리는 느긋함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가 "길이 막혀서" 또는 "약속시간을 잘 못 알아서"라며 숨가쁜 목소리로 말할 땐 화가 나기보다 반가웠다. 공중전화 부스에 줄을 서서 앞 사람의 대화를 흘려듣거나 유추하는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첨단기업들이 다투어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때, 불현듯 자본과 물질의 노예가 돼 소중한 그 무엇을 너무 쉽게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어오는 바람이 슬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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