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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첫눈에 빌어보는 새해 소망

노재원/시카고중앙일보 편집국장

마침내 눈이 내렸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행여나 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눈이 새해 벽두 찾아왔다. 시카고의 겨울답게 강풍과 체감기온 섭씨 영하 30도의 혹한을 동반했다.

지난 해 10월 초순 바람눈이 두어 차례 흩날린 후 시카고에는 한동안 눈소식이 뜸했다. 눈 없는 시카고의 12월은 삭막했다. 첫눈이 오는 날 연인과 만날 약속을 할 나이도 아니고 오히려 눈 치우랴 힘들고, 빙판길 운전이 성가신 데도 눈을 고대한 것은 2014년의 우울한 기억들을 덮어버리고 싶었던 까닭이다.

지난해는 유난히 큰 일이 잦았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과 같은 갑질 논란과 통진당 해산 사태에서 보듯이 보혁.세대.빈부로 갈라진 진영 논리는 더 멀어지고 해묵은 갈등은 확대 재생산 됐다. 군에 간 멀쩡한 청년이 동료의 학대와 구타에 귀한 생명을 잃었고 권부에선 음험한 '십상시(十常侍)' 논란이 벌어졌다.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지구촌 역시 우울하고 슬픈 일들로 점철됐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파키스탄과 호주에서 연이어 발생했고 수백명이 탄 비행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깊은 바다에 추락했다. 미국에서는 비무장 흑인이 시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반복됐고 이에 따른 인종간 갈등이 불거졌다.



테러, 총격, 불황과 같은 우리 시대의 어둠이 하얀 눈에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구악은 사라지고 건강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초인(超人)은 오지 않고 광야는 멀기만 했다. 외려 구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이들의 질긴 연(緣)은 끊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거짓과 음모, 권모술수가 세상을 횡행했다.

어둡고 길었던 2014년이 가고 2015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새해에 내리는 눈이 서설(瑞雪)이 되었으면 좋겠다.

객관적인 능력에 의해 평가되고 각자의 꿈이 이뤄지는 정정당당한 사회. 편법이나 눈가림, 사리사욕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 대신 비전을 제시하고 실력을 갖춘 이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조직. 탐욕을 배제한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꿰뚫어보는 이들이 성공하는 세상. 더불어 사는 가치가 존중 받는 곳. 정직한 땀의 열매를 나누는 건강한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시대…. 부정과 부패는 눈(雪)에 갇히고 무능과 위선은 칼날 같은 추위에 소멸되기를 바란다.

새해엔 또 인간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되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이 터져나오는 감동이 함박눈처럼 소복소복 쌓이는 소식을 듣고 싶다. 그리하여 개천에서 용이 나고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삶을 나누었으면 한다.

물론 매화 향기 가득한 세상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엊그제 시사만평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주간지를 대상으로 한 테러가 발생, 수 십명이 죽거나 다친 일처럼 구각(舊殼)을 깨뜨리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와야 눈이 내리듯 새 세상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좌절 없는 성공은 드문 법이고 시련 없는 영광 또한 의미가 반감된다. 심지어 갈등을 치유하는 화해와 용서 역시 오랜 번민과 고뇌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매서운 바람이 지나간 후 나뭇가지나 지붕에 쌓여 있던 많은 눈들이 사라졌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것들은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추위와 눈으로 맞이한 2015년 새해의 초입, 더 꿋꿋하게 중심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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