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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동심 흔드는 어른들의 욕심

노재원/시카고중앙일보 편집국장

요즈음은 드물지만 1970,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러 유급하는 운동선수들이 꽤 있었다. 한창 성장기의 1년은 신체적 성숙도나 기량의 차이가 확연했고 당연히 경기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적이 중요한 지도자들로서는 핵심 선수의 1년 유급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엔 축구부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 학교는 5개 전국대회에 출전해 모두 우승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올렸다. 당시 3학년 선배 가운데 4명이 훗날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만큼 독보적인 팀이었다.

그 중 한 명인 B선배에 얽힌 일화 하나. B는 중학교 3학년 때 고교팀 경기에 차출돼 팀 승리에 일조했다. 문제는 경기 후 상대방이 B가 부정선수라고 항의한 것이다. 워낙 출중한 실력을 지닌 B가 나이 어린 중학생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빌미가 됐다. 결국 B가 뛴 팀은 몰수패를 당했지만 그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다.

작년 8월 열린 리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에서 한국팀과 맞붙었던 시카고 '재키 로빈슨 웨스트'팀의 미국 챔피언 자격이 박탈됐다. 시카고 남부지역이 아닌 교외 지역에 사는 선수가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말 인근 에버그린파크팀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대회조직위원회가 11일 "재키 로빈슨 웨스트가 선수 거주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결론짓고 미국 및 지역 챔피언 타이틀을 떼고 감독·리그 책임자를 징계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많은 이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룰은 룰'이라며 조직위의 결정을 수용하면서 어른의 욕심이 순수한 동심에 상처를 남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어린 선수들에게는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자부심을 잃지 말고 당당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욕심은 쉬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에버그린파크팀 역시 시카고 거주 선수를 영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 선수의 어머니가 예전에 아들이 해당 리그팀으로부터 "주소지를 바꾸면 된다"며 영입 제의를 받았던 사실을 고백, 이 같은 관행이 만연됐음을 시사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5, 6년 전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두 아들 모두 시 공원국이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 리그에서 약 10년씩을 뛰었다. 5~7학년 때는 마을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그 즈음 정규 시즌이 끝난 후 토너먼트 대회에 출전한 막내 팀이 첫 경기를 앞두고 선수 한 명이 부족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일부 선수들이 여행 등 개인 사정으로 빠진 탓이었다. 감독은 수소문 끝에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했던 선수 한 명을 데려왔고 경기는 짜릿한 재역전승으로 끝났다.

이튿날 2차전을 위해 아침 일찍 공원 경기장으로 가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날 우리에게 패한 팀 감독과 마주쳤는데 "너희 팀 몰수패야. 소식 못 들었냐"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추가로 데려온 선수의 자격이 불거진 것이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어설픈 플레이로 그저 머릿수만 채운 선수 때문에 소중한 승리가 물거품이 됐다. 이후 우리 팀 감독은 마을 대표팀은 물론 타운 리그서도 더 이상 감독을 맡을 수 없었다.

타인의 일이나 나와는 동떨어진 현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규정은 규정'이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되면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당시 몰수패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억울하다. 아이들 마음에 남겨진 아쉬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재키 로빈슨 웨스트' 팀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어른들의 숨겨진 욕망도 언뜻 본다. 평소 흑인이나 소수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 시장 후보가 "재키 로빈슨 웨스트는 우리의 자랑이고 여전히 챔피언"이라고 돋우는 목청은 선거 때가 되면 들려오는 표를 얻기 위한 공허한 메아리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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