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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대의 공존, 이슬람 맹주 노린다

장열 기자, 200만명 난민 유입 터키를 가다

곳곳 초대 대통령 우상화
아르메니안 학살 부정 여전
야심찬 국가발전 계획 추진
그러나 도심엔 난민들 북적


터키 이스탄불엔 4월인데도 해가 지면 입김이 진하게 나올 정도로 춥습니다. 이슬람국가(IS)의 학살과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 국경을 넘은 수십만 명의 난민이 있습니다. 그들을 참상을 취재하러 시리아 최접경 지역인 하타이 난민촌으로 떠나려 합니다. 이스탄불의 모습을 우선 전합니다.

동서고금은 이스탄불에서 응축됐다. 유럽과 아시아가 맞닿았다. 실크로드의 끝점이 찍혔던 곳이다. 거기서 문명이 교차했고, 시대가 연결됐다. 교류는 생기를 돌게 한다. 활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20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경적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입구는 번잡하다. 온통 노란 택시와 사람들이 넘친다. 한 공항 직원이 "이곳은 국제선 여객만 연간 4000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공항"이라고 귀띔했다.



이스탄불은 지정학상 공존과 상충이 절묘하게 엉겨있다. 현대적 색채 속에 도시를 울리는 아잔 소리가 미묘함을 덧칠한다.

가장 먼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1881~1938)를 마주했다. 어딜 가나 그의 초상화가 반긴다.

그는 터키의 지주다. 이스탄불의 첫 관문(공항)도 그의 성으로 명칭 했다. 성씨(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는 국회가 부여(1934년)했다. 달러를 '리라'로 환전했다. 모든 지폐엔 그의 얼굴이 새겨있다.

아타튀르크에 대한 추앙은 종교적 신념에 버금간다.

구르칸 허네빅(자영업)씨는 "우리에게 그는 최고의 지도자였다. 아타튀르크를 모욕하는 행위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를 종교(이슬람)와 분리했다. 세속주의를 주창했다. 서양 교육을 도입했고, 여성 해방을 허락했다. 터키(1923년)는 그의 근대적 개혁으로 세워졌다.

24일(금)은 터키가 불편한 날이다.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기'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 강제 추방을 시행(1915년 4월24일)하면서 당시 150만 명이 질병, 기아, 집단 사살로 희생됐다. 일부 유럽국가는 이 비극을 '제노사이드(학살)'로 규정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난 12일 "20세기 첫 인종학살"이라고 표현했다. 터키는 매번 그러한 역사적 관점을 거부 또는 반발한다.

구시가지(술탄아흐멧)로 향했다.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등 문화 유산이 즐비한 곳이다. 길거리에 1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아르메니아가 '학살 100주기' 행사를 개최하는 날, 터키는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을 기념키로 했다.

가판대에서 신문 한 부를 집어 들었다. 터키는 총선(6월7일)을 앞두고 있다. 거리는 선거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다.

터키는 지금 '국가 발전 프로젝트(2023 비전)'를 시행중이다. 건국 100주년(2023년)까지 세계 10대 경제국, 유럽연합 가입, 세계 5대 관광국 진입을 내걸었다.

실크웨이브미션(터키선교단체) 이세웅 총무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중심주의'를 내세워 터키의 힘을 다시 결집하고 이슬람권의 맹주 국가가 되기 위해 초석을 다져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발걸음은 해질녘 '예니 자미(yeni camii)'란 모스크 앞에 멈췄다. 예니 자미는 '새로운 모스크(new mosque)'란 뜻이다.

모스크는 무슬림의 정신이다. 그들은 정착지마다 사원을 세우며 정체성을 확장해 나간다. 터키는 얼마전 문호를 개방한 쿠바에 모스크 건설을 제안했다. 힘의 과시다. 최근 한국 이태원 이슬람 사원의 재건축까지 도맡았다. 터키는 세속주의를 벗고 다시 이슬람으로 회귀중이다.

터키는 시대적 난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는 이스탄불의 어제(구시가지)와 오늘(신시가지)를 가른다. 21일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에 위치한 탁심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스탄불에서 외침과 저항의 상징적 장소다. 탁심 광장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차례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터키 내 좌우 대립의 충돌, 노동절 시위, 정부군의 발포 등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곳이다.

피가 서린 탁심 광장은 지금 현대적 분위기가 묻어난다. 과거의 아픔은 유명 브랜드 광고와 네온사인이 가득한 탁심의 번화가(이스티그랄 거리)에 가린 듯하다.

화려해도 그림자는 있다. 외진 골목을 지나칠 때마다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돈을 달라며 손짓한다. 주머니 속에 있던 10리라를 꺼내 한 여성에게 갔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손으로 배를 만진다. 계속 굶주린 것 같다.

호텔 직원 시야르 케피르씨는 "그들에게 돈을 주지는 마라. 대개 난민들"이라며 "터키 경찰은 난민을 적발하면 난민 캠프 등으로 다시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터키내 난민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 시리아 난민 180만 명, 쿠르드 난민 20만 명이 터키로 들어왔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통계에 따르면 터키 남동부 지역에 설치된 캠프(22곳)의 수용인원은 25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난민촌 주변에 그대로 방치된다.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 도심 지역으로 올라오지만 적응은 어렵다.

무사 알악산(식당 웨이터) 씨는 "터키 실업률이 9%를 넘는 상황에서 저렴한 노동력의 난민이 유입되자 터키의 근로 임금까지 낮아지고 있다"며 "범죄나 절도 등 사회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난민은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터키 내에선 쿠르드인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쿠르드 인은 터키 인구(8000만 명)의 약 20%다. 그들은 소수지만 정당도 있다.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 터키 내에서 쿠르드 언어 사용이 합법화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터키의 겉과 속은 괴리가 크다.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정서는 이슬람을 제외한 타종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민증엔 신념(종교)이 표시된다. 경찰은 종교 활동을 감시한다.

언론의 자유는 허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반정부 성향의 언론인을 모두 체포했다. 이러한 내부 사정은 유럽연합(EU) 가입을 갈망하는 터키가 반드시 넘어야 할 문제들이다.

그렇다 보니 터키의 난민 수용 정책은 국제사회 가운데 일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몸짓도 내포돼 있다. 현재 최대 난민 수용국으로 지난해만 40억 달러를 난민 정책에 투입했다.

난민촌은 터키 남동부 지역에 주로 형성됐다. 그곳엔 난민들이 시리아 내전과 IS의 학살을 피해 국경을 넘고 있다. 시리아 최접경 지역 하타이로 향하기로 했다.

그곳엔 슬픈 현실이 기다린다.

jang.yeol@koreadaily.com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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