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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미리 준비하는 '세상과의 이별'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나의 아버지는 5년 전에 90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느날 우연히 머리 뒤쪽에서 발견된 부스럼이 몇 달 사이에 점점 커졌고 조직 검사 결과 혈관벽 세포에서 생긴 악성 종양이 원인이었다.

40여년간 의사생활을 한 큰 딸인 나, 외과 의사로 일생을 보낸 사위, 수십년을 간호사로 일해온 둘째딸과 맏며느리 모두가 쇼크에 빠진 기분이었다. 주치의는 희소하지만 일본 노인 몇 명이 이 병에 걸린 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는 학술 논문을 소개하며 즉각 항암 방사선 치료를 지시했다.

아버지는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라며 8번째 치료 후에는 강하게 치료를 거부하셨다. 종양 부위가 점점 심해진 데다가 입맛이 없어지고 기력이 쇠잔해져서 주치의도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었다. 얼마남지 않은 귀한 시간을 효과도 없으면서 몸에 심한 고통을 가하는 치료보다는 안정을 취하며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라는 인간다운 충고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는 항암 치료를 구태여 12번까지 갈 필요가 없음을 승낙하셨다. 자신의 직장인 워싱턴주 병원에 휴가를 내고 내려와서 아버지의 간호에 매달려있던 여동생도 환자를 위해서 찬성했다. 두명의 남자 동생 중 LA에 살고 있는 맏아들은 아버지의 고통을 매일 옆에서 보아온 터라 당장 그 안을 반겼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오랫동안 타지에서 일하며 생활하던 막내 남동생이 감정이 격해지며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간의 경과를 제 눈으로 보지 못한 막내로서는 온가족이 얼마나 냉혈 동물처럼 느껴졌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신이 말짱하신 환자 본인과 어머니가 원하는 길이니 호스피스 담당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프로그램의 대표 간호사가 환자를 방문해 찬찬히 검진을 끝낸 후 여러가지 처방을 내렸다. 우선 진통제를 시간에 맞추어 투여시키고 마음에서 불안감을 없애는 안정제와 함께 식욕 항진제를 넉넉히 드려서 어머니가 만드시는 모든 음식을 아버지가 기쁘게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평화로운 상태에서 2주쯤지난 어느날 정오 아버지는 시원한 사이다가 마시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금방 구해다 드린 칠성 사이다를 맛있게 들이켜신 아버지는 편안하게 앉아 계시더니 몇 번 깊은 숨을 쉰 뒤 눈을 감으셨다.

머리 피부 위로 온통 퍼진 악성 종양 때문에 흰 붕대로 감겨있는 것 외에는 고통이나 괴로운 기색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며칠 전에 90회 생일파티를 가족들과 함께 했던 바로 그 침대 옆에서 말이다. 자신의 장례를 주관할 목사님과 미리 인사를 나눈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호스피스 프로그램에 나는 감사를 했다. 단지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고 모든 가족이 그 결정에 참여하게 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막내 동생은 아직도 다른 형제들과의 만남을 꺼리는 듯하다. 이즈음 한인타운에서 사전의사결정서(Advanced Directive)를 준비하는 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이것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방지하는 최상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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