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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스캘리아 대법관의 빈자리

김완신/논설실장

미묘한 시기에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대법관이 사망했다. 지난 13일 79세로 별세한 스캘리아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후 30년간 재직했다.

연방대법원에서 스캘리아는 보수의 좌장 역할을 했다. 9명의 연방대법관 성향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보수성향이 우세하다. 닉슨 대통령 시절 이후 40여년간 보수 우위가 지속돼 왔는데 스캘리아의 자리가 진보적 인물로 채워지면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바뀌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스캘리아의 빈자리에 공화 민주 양당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최종 임명된다. 하지만 상원은 승인이 아닌 권고와 동의를 표시해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상원에서 거부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역사상 단 12명이 상원에 의해 대법관 임명이 좌절됐다.

연방대법관의 임기는 종신이다. 종신직이어서 4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구애받지 않고 법정신에 의거해 소신껏 판결할 수 있는 자리다. 대법관은 스스로 물러나거나 은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한받지 않는다. 다만 하원이 대법관을 탄핵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단 1명만 탄핵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것도 1805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하원 탄핵이 없어 사실상 대법관 해임장치는 없는 셈이다. 대법관 직무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도 '좋은 행동(good behavior)을 하는 동안'이라는 모호한 규정을 정해 놓고 있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스캘리아 대법관의 사망과 관련해 "후임자를 지명하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에 주어진 책무"라며 신속하게 이를 수행할 것을 밝혔다. 상원이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동의절차를 진행하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도 했다. 백악관에서는 이미 인선 논의가 시작됐고 내주에 지명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백악관의 신속한 지명 계획에 공화당의 반발도 거세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은 11월 선거가 있기 전까지 대법관 임명에 필요한 일련의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또 "차기 대법관 선정 과정에 미국인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며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상원이 공석인 대법관을 채우기 위한 조치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맞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스캘리아 대법관의 사망이 올해 대선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후임 대법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이념적 성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오바마케어 이민개혁 행정명령 총기 규제 낙태 문제 등 보수와 진보로 의견이 크게 갈리는 사안들이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19세기에는 대법관이 재임 중 사망하는 경우가 흔했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재임 중 사망한 대법관이 없다. 2005년 재임 중 사망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이 유일하다. 재직 중 대법관이 사망했을 때 더욱이 선거 연도에 사망했을 때 후임자 선정과 관련해 적용할 선례도 없는 상황에서 양당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법원 청사 앞에는 정의와 법의 여신 디케의 동상이 서 있다. 오른 손에는 법집행의 준엄함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왼손에는 판결의 공정성을 뜻하는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의 양 끝을 보수와 진보에 비유한다면 스캘리아의 사망으로 연방대법원의 저울은 수평으로 돌아왔다. 이제 보수 또는 진보로 추를 기울게 하려는 공화 민주의 싸움이 막 시작됐다. 공정해야 할 법정신도 이념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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