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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존엄한 죽음을 위한 생각의 변화

수잔 정/소아정신과 의사

몇년 전부터 내가 근무하는 카이저병원에서는 환자에게 특별 질문서를 주고 답을 받은 다음 환자 일지에 첨부한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악성 암이나 심장마비 등 중증질병 말기 상태일 때 심폐소생술을 원하십니까?' '호흡이 불가능하거나 음식 섭취가 어려울 때 인공 호흡기 사용이나 튜브를 통한 음식 섭취를 원하십니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의료기술과 약품의 발전은 수명 연장과 함께 의료인이나 병원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려왔고 1954년엔 장기간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을 퇴원시키기 위해 '양로원(Nursing Home)'이 생겼다.

1965년 제정된 메디케어 건강보험법과 함께 양로원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차대전 이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쳤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의학이 발달한 1980~90년대에는 80% 이상의 사람들이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생을 마쳤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의학의 한계를 깨닫고 완화치료(Palliative Care)나 호스피스(Hospice)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40% 이상이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둔다.



내가 의과 대학을 졸업한 1970년대에는 완화치료나 호스피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특히 서양에서는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고 의사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년 동안 환자들은 듣도 못한 항암제 약품들을 바꾸어 복용하다가 고통 속에 눈을 감아야 했다. 아툴 가완디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책'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 따르면 가족들의 요구 때문에 별 성과도 없이 힘들기만 한 수술들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가완디 박사는 의사들이 환자나 그 가족들과 조용히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며 겸허하게 환자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의사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경제적으로 보상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어느 의과대학 노인학과에서 약 500여 명의 노인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연구를 했다. 제1 그룹 노인들에게는 노인과 전문의들이 극단적인 수술이나 치료 대신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청결하게 유지하며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권했다. 제2 그룹의 노인들에게는 적극적인 시술이나 약품사용을 권했다. 시간이 지나 두 그룹 모두 약 10%의 환자들이 사망했지만 제1 그룹 환자나 가족들은 훨씬 마음이 평화로웠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그러나 웬걸, 얼마후 이 대학의 노인학과는 문을 닫았다. 한 환자당 약 1300달러의 적자가 났고 메디케어는 적자를 보상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완디 박사는 비록 돈은 되지 않지만 대화로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생을 하직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의사의 도리라고 여긴다. 그는 110세에 인도에서 사망했던 할아버지나 아버지 모두 위엄있게 죽음을 맞는 것을 경험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수천년간 이어진 가족과 민족의 고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귀한 과정임을 느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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