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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미 리 박사는 2세들의 롤모델

장태한/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연구소장

지난 2일 새미 리 박사가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LA타임스는 새미 리 박사의 별세 소식을 1면에 게재했고 12면 전면에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필자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의 기금을 받아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의 구술사 프로젝트로, 작년 새미 리 박사와의 약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95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정정했다. 다만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새미 리 박사의 중국계 부인인 로즈 여사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후세에 새미 리 박사의 모습을 전할 수 있는 인터뷰 영상을 갖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새미 리 박사에게는 다이빙 영웅이자, 인종 차별을 이겨낸 올림픽 2관왕, 미국 아마추어 선수 단 한 명에게 그 영예가 돌아가는 설리반상 수상자,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새미 리는 1920년 LA에서 태어났고, 김영옥 대령이 비슷한 시기인 1919년 LA에서 출생해 둘은 친한 친구가 됐다. 그럼에도 새미 리 박사는 김영옥 대령의 활약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필자가 영문으로 번역한 책 'Unsung Hero'를 선물했는데 책을 다 읽고 그는 나에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이처럼 새미 리와 김영옥은 LA에서 출생한 한인 2세들이며, 이들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의 역경을 이겨내고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우뚝 선 리더들이다. 김영옥 대령의 이야기는 이제 잘 알려진 편이고 새미 리 박사의 이야기도 차세대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후대에 모범이 되는 자랑스러운 한인이 되기까지, 새미 리 박사는 견고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야 했다. 새미 리 박사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백인 여자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일이 있었다. 이때 백인 친구의 어머니가 동양인 새미 리가 있다고 파티를 시작하지 않아 그는 결국 나가게 되었다.

또한 동양인에게는 수요일에만 수영장 사용이 허락되던 시절이 있었다. 목요일에는 수영장 물을 교체하기 때문에 수요일만 수영장 사용이 허락된 것이다. 올림픽 2관왕이 된 후 새미 리 박사는 당시 수영장 관리 책임자를 만나게 되었다. 동양인에 대해 차별한 것에 화를 내자, 그 책임자는 "우리가 정말 목요일 수영장 물을 전부 교체한 줄 아느냐"라고 대답했다. 수영장 물은 실제로 교체된 것이 아니라 흉내만 낸 것이었고 일주일 하루만 동양인들의 수영장 출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새미 리는 모래 수영장을 만들어 피눈물 나는 연습을 했고 올림픽 2관왕이 됐다.

새미 리 박사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작은 키의 새미 리 박사는 종종 특강 요청을 받았고 강연 중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청중들을 사로 잡았다. 인종 차별을 이겨내고 올림픽 2관왕에 오른 새미 리 박사. 이제 그는 우리 곁에 없다.

차세대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 새미 리 박사와 김영옥 대령의 이야기가 널리 전해져, 그들이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라나서 미주 한인 사회, 미국, 그리고 모국인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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