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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개성공단엔 두 얼굴이 있다

김수정/한국중앙일보 외교안보선임기자

2008년 10월 바람 불고 흐린 날로 기억된다. 군사분계선을 지나 도착한 개성공단(개성공업지구)은 벌거숭이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신세계였다.

"4년 전 채용 면접 때 스무 살도 안 된 아가씨들이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째려보더라고요.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는데 지금은 '사장님 건강 챙기시라'고도 하고." "북한 관리들 없는 곳에선 이 친구들이 그래요. '솔직히 남조선이 접수해주면 좋겠다'고."

업체 대표, 근로자 통근버스 운전기사가 해준 얘기들이다. 운전기사는 "개성 주민들의 때깔이 달라졌다"고 했다.

1998년 소 1001마리를 끌고 방북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제안해 2000년 김대중·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현실이 된 개성공단은 한때 통일의 모판으로 불렸다. 2004년 첫해 16개 남한 기업과 북한 근로자 6013명으로 시작, 10여 년 지나 124개 업체와 5만6320명의 일터로 커졌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단속해도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을 터다.



그러나 '통일의 상징' 개성공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 한국은 매년 1억 달러의 돈을 근로자 임금 등으로 북한 정권에 주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 돈이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해도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제재의 목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개성공단 재개 목소리(상황 변화를 전제로 깔고 있지만)가 커지고 있다. 특히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인쇄 인터뷰를 통해서다. 문 대통령도 지난 1일 제주평화포럼 축하메시지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게 하겠다.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일구겠다"며 대화를 통한 핵 문제 해결, 나아가 개성공단 확대를 포함한 남북경제공동체 구상까지 밝혔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 차례 탄도미사일 도발로 응답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대화'는 한다는 거다. 이 같은 대북 어프로치를 3주간 지켜본 미국 등 국제사회는 물음표를 던지는 분위기다. 외교 소식통은 "개성공단 재개 얘기가 계속 나오고, 대북 강경 조치를 촉구하던 한국의 재외공관들이 '함구' 모드로 전환하면서"라고 전했다. "개성공단 재개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마커스 놀런드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부소장, 코리 가드너 미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 등)이라고 했고 미 정부는 1일 초강력 독자 제재를 전격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남북관계가 열려 있어야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타당한 어프로치지만 이는 북한이 드라마틱하게 개과천선했을 때의 얘기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데다 최근 급가속하고 있어 이를 막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새 정부가 '현 한반도 상황은 보수 정권 9년의 잘못 때문'이란 프레임에 갇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남북대화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지난 20년 대북정책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국제사회와 동떨어져선 한국이 오히려 소외되고,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북한이 '착한 동생'으로 끝까지 남았던 적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군사적 도발은 차치하고라도 북한이 개성공단의 한국인 근로자를 137일간 억류하고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한 뒤 시신과 북한 용의자 송환을 위해 말레이시아인 11명을 인질로 억류한 패악부터 상기하면서 개성공단 재개를 얘기하는 게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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