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윌셔 플레이스] 폴 버니언의 '도끼 작전'

미네소타는 동네마다 물을 끼고 산다. 크고 작은 호수가 1만 개가 넘어서다. 이곳 초등학생들에게 왜 호수가 이렇게 많이 생겼느냐고 물으면 열의 아홉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짐짓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거야 '폴 버니언(Paul Bunyan)'이 만든 거잖아요."

버니언은 수퍼 거인. 집채 만한 도끼를 어깨에 둘러멘 나무꾼이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땅이 움푹 꺼져 이곳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됐다고 한다. 대체 발이 얼마나 크길래. 뻥도 분수껏 쳐야지. 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버니언과 관련해선 별의별 얘기가 다 전해진다. 눈 깜빡할 사이에 도끼 한 자루로 80그루가 넘는 나무를 잘랐는가 하면 미시시피 강에서 로키 산맥까지 나무들을 죄다 베어내 대평원을 만들었다는 등등.

폴 버니언이 주목을 끈 건 1910년대. 벌목꾼들 사이에 우스개로 굴러다니던 것이 어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가 책으로 펴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정작 버니언이 미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공이 컸다. 그가 누구인가. 미국의 계관시인 아닌가. '폴의 아내'란 시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전설에선 버니언이 배우자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프로스트가 이 작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폴 (버니언)을 벌목 캠프에서 밀어내려면/ "폴, 아내는 어떠신가" 한마디만 물으면 됐지/ 그러면 그는 (화가 나) 종적을 감췄다네."

버니언에게 '아내'는 대자연의 넉넉함과 생태환경의 질서를 의미할 터. 그러니 아내에 대해 묻는 자체가 그녀의 가치를 의심하고 훼손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시대적 배경도 큰 몫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는 한낱 변방 취급을 받던 미국을 일약 세계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렸다. 땅도 가장 큰 나라, 힘도 제일 센 나라. 무엇이든 크고 높은 것은 미국을 상징하기에 보기도 좋았겠다. 뉴욕 맨해튼의 빌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폴 버니언의 동상도 곳곳마다 높다랗게 세워졌다.

훗날 이 거인은 한반도에서도 한껏 힘자랑을 한다. 지난 76년 이맘때쯤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군의 만행과 맞물려서다. 발단은 어이없게도 공동경비구역 내의 미루나무. 너무 웃자라 북한군 초소감시에 장애물이 되자 미군이 가지치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것. 그것도 끔찍하게 도끼로.

이때 미군의 무력시위 작전명이 바로 '폴 버니언'이었다. 항공모함이 동원되고 B-52 폭격기 등 미군의 최첨단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미군은 미루나무를 아예 밑둥채 뽑아버리고.

요즘 북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촉발된 한반도 사태를 보며 문득 40여 년 전의 미루나무가 떠오른다. 상황이 그때와 빼닮았다. 북한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연이어 ICBM을 시험 발사하자 미국은 '예방적 타격'을 흘리는 등 강경 모드로 방향을 틀었다. 한마디로 '도끼'를 꺼내 들겠다는 거다.

'미루나무' 때는 김일성의 사과로 종결됐으나 그의 손자는 되레 'LA와 워싱턴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협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참에 아예 끝판을 보겠다는 건지.

그러고 보니 오늘(10일)은 '폴 버니언의 날'이다. 곳곳에서 도끼 묘기가 펼쳐진다. 전설에 따르면 그랜드캐년 역시 버니언이 도끼로 깎고 다듬어 만든 걸작품이다. DMZ(비무장지대)도 버니언에 맡겨보면 어떨지. 대량살상무기들을 도끼로 찍어낸 뒤 그곳을 생태계의 보고로 만들 텐데.


박용필 / 논설고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