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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코리아가 정말 쐈대요?"

"김(정은)이 괌에 핵 미사일을 쏜다면서요." DMV 직원이 인사랍시고 건넨 말이다. 엊그제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오랜만에 찾은 DMV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감탄사가 입언저리에서 뱅뱅 돌았을 만큼 업무처리가 빨랐고 효율적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직원이 북핵 얘기만 안 꺼냈어도.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도 껴들었다. "코리아가 정말 쐈어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거칠게 쏟아냈다. 절대 그런 상황은 안 일어난다며 애써 설명했으나 그 말이 먹힐 리 없었다.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는데 또 웬일, 뒤에 줄 서 있던 여성이 묘한 웃음을 짓지 않는가.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그 '미치광이' 때문에 도매금으로 몰매를 맞은 기분이었다.

핵과 미치광이, 알고 보면 둘은 제대로 된 조합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탄핵 직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예가 그렇다.

1974년 8월의 어느날, 해병대의 '머린 원(대통령 전용 헬기)'에 올라탄 닉슨은 배웅나온 백악관과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두 팔을 높이 치켜들며 V자를 그려보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관리들 가운데 가슴을 쓸어내린 이가 제임스 슐레진저 국방장관이다. 닉슨 뒤에 늘 그림자 처럼 붙어다니던 '풋볼(핵 코드가 든 검은 가방)' 장교가 보이지 않아서다. "휴~ 살았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못미더웠던지 전군 주요지휘관들에게 긴급명령을 내렸다. "혹 대통령이 핵 발사를 명령하면 나 또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반드시 확인하시오." 그 시각이 바로 닉슨의 대통령직이 종료되기 불과 2시간 전이다. 핵무기 사용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어서 슐레진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것. 퇴임을 앞두고 닉슨은 술에 쩔어 살았지 않은가. 언젠가 그가 한 농담이 떠올라 섬뜩하기조차 했다. "내가 (핵 발사를) 지시하면 25분 내에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정치판에선 이 같은 핵 협박을 일컬어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이라 부른다. 이 전략이 들어맞은 건 베트남전 평화회담. 키신저가 프랑스 파리에서 월맹 측 수석대표 레둑토와 마주 앉았다. 협상은 예상과 달리 난항을 거듭했다.

휴식시간 중 둘은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 받았다. "하버드 교수로 그냥 남아있을 걸…." 키신저가 후회하는 듯한 말을 슬쩍 건넸다. "내 보스는 한마디로 '매드맨' 미치광이야. 합리적인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지. 꼭지가 돌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어 키신저가 핵 펀치를 날렸다. "협상이 결렬됐다는 보고를 받으면 핵을 쓸 게 틀림없어. 그래서 내가 닉슨을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걸세." 기겁을 한 레둑토는 하노이에 급전을 쳤다. 이후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돼 7년 전쟁은 막을 내린다.

키신저의 코치를 받았는지 트럼프 대통령도 닉슨처럼 '매드맨' 행세를 하고 있다. 북한에 '화염과 분노' 등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북의 김정은은 한술 더 떠 '괌 포위 사격'과 같은 독한 말을 연일 생산해내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한 북에 '미치광이 이론'이 통할리 없겠고.

전엔 한반도 위기상황을 오바마 탓으로 돌렸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의 '전략적 인내'가 고육지책이 아닌 상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쟁을 할 수 없다면 참을 수밖에. 언제까지 인내해야 되나. 북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다. 그나저나 DMV에서 만난 할머니가 영 거슬린다. 남과 북을 모르는지 아니면 헷갈려서인지 계속 '코리아'라고 해대서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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