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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광장] '역사 바로 세우기' 지금부터라도

나광수 / 수필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겠습니다.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 72주년 경축사에서 한 말이다. 이 대목에는 우리 역사의 아픈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라에 몸 바친 유공자가 국가의 예우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우리는 왜곡된 역사를 안고 오랜 세월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고, 바른 일을 한 자가 사회의 냉대, 소외,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야 하는 등, 올바른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못하였다.

우리가 왜 일제부역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는지 그 발단과 결과를 한번 짚어보기로 한다. 해방이 되고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서 남한에 미군이 진군하자 바로 군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과도입법의원이 '특별조례법'을 만들어 친일파를 처단하려고 했으나, 법률의 인준권을 가진 미군정장관이 인준을 거부하였다.



미군정은 당시 일제강점기에 관리를 지낸 조선인들을 대거 요직에 기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정은 그들의 국익에 따라 남한의 정세를 안정시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는 게 우선이었지, 친일파 청산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것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한번의 기회는 있었다. 군정이 끝나고 제헌국회는 친일파를 청산할 목적으로 1948년 9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각 분야에서 뿌리를 내린 친일파와 이승만의 끈질긴 방해로 이것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민특위가 친일 경찰 최운하를 체포하자 전국에서 경찰이 들고 일어났고, 심지어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위원들을 폭행·체포했으며, 서류 등을 가져가 버렸다.

이 습격은 이승만 자신이 지시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주변의 친일파들을 정부수립의 공로자이며 반공주의자라고 적극 옹호하고 나섰고, 이로 인해 우리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할 수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경찰의 습격은 반민특위의 위축을 가져왔고, 거창한 이름과 달리 별 성과도 없이, 1949년 10월 4일에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원래 한 나라의 보수세력은 그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애쓴 사람들이 형성하는 것이 세계역사의 올바른 과정이다.

미국이 영국과 싸워 쟁취한 독립전쟁의 예를 보나, 독일에 대항했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덴마크·네덜란드 등을 보나, 심지어 북한을 봐도 항일무장독립군세력이 일제부역자들을 청산하고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이승만 정권과 함께한 일제부역자들이 보수의 한 축을 이루었다.

역사는 다시 쓸 수는 없지만 바로잡을 수는 있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나라를 위하여 몸바친 이들과 후손을 예우하고 유적을 보존하는 일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들의 행적을 밝은 역사 앞으로 끌어낼 때 과거의 왜곡된 역사는 어둠 속에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 일은 선조가 물려준 자랑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독립유공자는 3대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는 이 당연한 말을 듣는 데까지 우리는 너무 멀고 고단한 길을 걸어왔다. 긴 72년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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