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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총기가 '문화'로 미화되는 나라

가장 기억에 남는 관광상품 제 1호. 미국서만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사격장이다. 10년도 훨씬 넘었는데도 여태껏 그 추억을 떠올리며 고마워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실탄 사격이라니. 그것도 M16, 우지 기관총 등 온갖 총기류를.

운때가 맞으면 건쇼, 곧 총기전시회도 구경할 수 있다. 페어그라운드에 총포상들이 텐트를 치고 각종 무기류를 진열해 놔 눈요기도 제격이다. 개중에는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에서나 봤을 소형 첨단무기도 눈에 띈다. 한국서 온 손님은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그랜드캐년보다 건쇼 구경이 더 인상적이었다는 게 괜한 말은 아닐지 싶다.

언젠가 건쇼에서 귀동냥해 들은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호플로포비아(hoplophobia)' 이른바 '총기 공포증'이다. 총기규제론자들을 비아냥대는 슬랭이라고 한다. 총을 다루지 못하면 겁쟁이로 매도된다고 할까.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는 나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에 대한 답은 늘 상투적이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숫자에 비하면…." 총이 자동차 보다 덜 위협적이라니.



또 하나 있다. 총이 문화로 간주되는 곳이 미국이다. 이름하여 '건 컬처'란 것이다. 어떻게 살상무기를 소지하는 행위가 문화란 말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총기문화'가 있는 나라다.

미국서 총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함의한다. 이 대목 만큼은 역사학자들도 일부 인정하는 바다. 대영제국의 정규군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나라. 주민들이 총기로 무장하지 않았더라면 꿈도 못꿨을 인류 최대의 사건이다.

자유를 얻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의 집권기간은 기껏 4년에서 8년이다. 권력은 속성 상 한번 맛들이면 내려놓기 어렵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한 켠에는 영구집권의 야망이 꿈틀댔을 터. 그런데도 미국엔 독재자가 없다. 왜? 전 국민이 무장하고 있는데 감히.

누구나 알고 있는대로 총기소유는 수정헌법 제2조에 나와 있다. 국민의 기본권이어서 뜯어고치기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엔 '수정헌법 제2조의 날(the 2nd Amendment Day)'이란 게 있다. 그런데 주마다 기념일이 다르다. 대개는 12월 15일이다. 오클라호마 같은 곳은 그러나 6월 28일로 잡혀 있다. 전자는 제2조가 비준된 날이고 후자는 2010년 연방대법원이 총기규제와 관련해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린 날이다. 미국서 정치인들이 가장 금기시 하는 어젠다가 총기규제다.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정치생명이 한순간에 훅 날아갈 수 있어서다. 언젠가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가 입방아에 올랐다. 총기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매장에 총기를 가져오지 말라는 공개 편지를 써 논란에 휩싸인 것. "라테나 잘 만들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슐츠는 자신의 기업가적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총기규제를 입에 담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엊그제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삽시간에 '킬링필드'가 되다시피 했다. 전에는 '건 컬처'가 오늘의 미국을 지구촌 최강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믿었는데 TV영상을 보곤 생각이 싹 바뀌었다. 총은 결코 문화가 아닌 저주의 대상이란 현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총이 자유를 지켜준다는 말도 더는 믿지 못하겠다. 앞으론 호텔도 공항처럼 검색이 삼엄해질 테니까. 총이 자유는커녕 모든 사람을 구속하는 수단이 될 게 뻔하지 않는가. 그냥 총만 보면 겁부터 나는 '호플로포비아'로 살아가련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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