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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서울 브라만'의 머그샷

괘씸죄는 미국에도 있다. 특히 사리를 분별할 만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벌금폭탄을 맞거나 심지어 수갑이 채워져 경찰차 뒤켠에 실린다.

15년 전 쯤인가. 동료 기자가 괘씸죄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취재를 나갔다가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늘 속도위반에 신경이 쓰이기 마련. 그래서 DMV(차량국)에 취재용 자동차 번호판을 신청했다.

이 플레이트는 왼쪽 상단에 작은 글씨로 'P'자가 새겨져 있다. Press의 첫 글자로 언론사를 뜻한다. 경찰이 금방 알아볼 수 있어 단속을 피해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작동한 것. 솔직히 신분과시 욕구도 한몫 했으리라. 일반인이야 P가 뭔지 알 까닭이 없을 터. 끗발있는 기관의 차량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안가 걸리고 말았다. 경찰의 면허증 제시 요구에 슬쩍 LA경찰국이 발급한 프레스카드(기자증)를 보여줬다.

그 순간 경찰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신 신분은 번호판을 보고 이미 알았다. 그러니 기자증 말고 라이선스를 내놓으라"고 짜증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유는 과속. 그것도 제한속도보다 무려 20마일이나 넘게. 경찰관이 딱지를 떼어주며 한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규칙을 어겨서야 되겠느냐." 창피한 나머지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머리를 처박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20마일 가운데 절반 정도는 깎아줬을텐데 괘씸죄가 적용돼 에누리 없이 20마일 과속 티켓을 받았다. 당장 P번호판을 떼어낸 것은 물론. 그 바람에 DMV에 과태료까지 내야했다.

번호판이 문득 생각난 건 최근 괌에서 체포된 한국 법조인 부부의 '머그샷(경찰의 피의자 사진)' 때문이다.

두 아이를 차에 방치한 채 쇼핑을 한 혐의다. 남편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소속 변호사, 아내는 현직 판사다.

인터넷에선 부부가 최소 45분 가량 아이들을 무더위에 홀로 나뒀는데도 경찰에 3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사건은 그러나 경찰과 남편이 나눈 대화에 방점이 찍힌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이들이 다칠 뻔했다." 괌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남편은 경찰의 말을 '웃어넘겼다'고 했다. "난 변호사고, 아내는 판사다."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린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경찰관의 반응은 기사에 나오지 않아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so what)."

얼마나 현지인 경관을 얕잡아 봤기에. 상대가 백인이어도 이런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네티즌들에 따르면 판사 아내와 변호사 남편은 연예인 못지않은 얼짱이다.

더구나 둘 다 서울대 출신이어서 그 자부심이 한국판 '보스턴 브라민(Boston Brahmin)'이라 부를 만하겠다.

브라민(또는 브라만)은 인도 카스트에서 최상위 계급. 보스턴을 포함한 뉴잉글랜드 태생으로 하버드를 나온 수퍼 엘리트를 이렇게 부른다. 부부에 '서울 브라민'이란 별명을 붙여줘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부부가 머그샷까지 찍은 걸 보면 괘씸죄에 걸린 게 틀림없다. 아이 둘을 위험에 빠트리고도 "우린 변호사, 판사"를 해대 경찰이 작심을 하고 수갑을 채웠을 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우쭐댔는데 한국에서는 오죽했으랴 싶다.

인간의 기초적인 상식조차 결여된 사람이 남의 유무죄를 판단하다니.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개념없는 '서울 브라민'이 으시대는 한 선진국이 되기는 글렀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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