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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시밀로' 전업주부의 날

죽은 지 10년도 훨씬 넘는 가수가 한국의 대기업을 살려냈다면 누가 믿을까. 그런데 현실이 그랬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8'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서다.

주인공은 페기 리(1920~2002). 노래도 뛰어나지, 몸매도 받쳐주지. 아마 여자가수로는 최초로 '섹시'란 수식어가 붙었지 않나 싶다. 광고의 배경음악이 바로 그가 불러 히트한 '시밀로(Similau)'다. 유튜브를 검색해 들어보면 금세 "아, 그 노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한인들도 그런데 하물며 미국인들이야.

음악에 빠져들고, 영상에 한 번 더 반하고. 수백만의 폭풍클릭이 이어졌다. 광고가 대박을 치는 바람에 갤럭시 노트8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고. 전작인 갤노트7 배터리 폭발사고의 악몽을 말끔히 지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밀로'는 영어가 아닌 스패니시 사투리.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갤럭시 노트8의 슬로건 역시 '아이 러브 유'다. 스마트폰의 기능을 로맨틱한 분위기의 영상으로 담아냈다. 삼성의 성공은 첨단기술이 큰몫을 해냈겠으나 페기의 공도 적지 않았겠다.



'시밀로'가 삼성의 스마트폰을 미국시장 점유율 1위로 끌어올렸다면 페기의 또다른 히트송 '나는 여인(I'm a Woman)'은 엄마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사를 간추리면 이렇다. "난 매일 양말 마흔 네 켤레를 빨아 줄에 내다 걸지/ 1에서 9까지 한 번 세워봐/ 스물네 장의 셔츠를 풀 먹여 다림질까지 끝내지."

2절은 주부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지를 말해준다. 스트레스는 또 어떻고. "집이 워낙 낡았잖아/ 닦고 문지르고…다임(10센트)처럼 반짝반짝 광을 내지/ 그러고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 얼굴에 대충 분칠을 해대고는 옷을 빼입지/ (클럽에서) 아침 4시까지 흔들어 대고는 돌아와 잠을 자/ 눈 뜨는 시간은 6시/ 그래도 괜찮아, 난 여자니까"

전업주부의 삶을 풀어냈다고 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노래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화제가 됐었다. 재선에 나선 오바마의 상대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오바마 캠프의 한 선거전략가가 롬니의 부인 앤을 겨냥했다. "평생 단 하루도 일을 안 해본 사람이…" 남편 잘 만나 베짱이처럼 놀고 먹었다며 인신공격을 퍼부어댔다.

참다 못한 앤이 입을 열었다. "아이 다섯, 그것도 모두 사내아이들을 키운다는 걸 상상해 봐라. 차라리 나가서 돈을 버는 게 더 쉬웠을 거다. 몇 번이나 뛰어나가려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서."

앤의 솔직한 고백에 주부들의 표심이 흔들렸다. 위기를 감지한 오바마가 직접 진화작업에 나섰다. "세상에 엄마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내 엄마도 싱글맘으로 나와 동생을 키웠다. (사랑의) 수고를 한 앤에 존경을 표한다." 라디오 방송마다 페기의 노래를 틀어 분위기를 잡은 것은 물론이었다.

기혼여성이 두 번째 아기를 낳으면 넷 중 하나꼴로 전업주부가 된다는 통계도 나와있다. 여권신장 못지 않게 가정 지킴이도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정확히 알 수는 없겠으나 소셜시큐리티 은퇴연금에 배우자 베니핏이 있는 걸 보면 짐작이 간다. 앤처럼 일을 안 해도 남편 몫의 절반을 받지 않는가. 양육과 가사가 얼마나 힘든 지를 인정한 것일 터.

매년 11월 3일은 '전업주부의 날(Housewife Day)'이다. 이날 반나절만이라도 아내에게 휴식을 주면 어떨지. '시밀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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