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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평화사관학교'는 영영 없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가정을 해봐야 교훈을 얻을 것 같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역사란 '만일(if)'을 따져봐야 하는 학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만약 9·11 테러가 없었다면? 미국에 사관학교가 또 하나 생겨날 수도 있었겠다. 이름하여 '평화사관학교(Peace Academy)'다. 웨스트포인트를 비롯한 군 사관학교와는 달리 '피스 아카데미'는 '평화의 전사'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4년제 정규 사관학교로 졸업 후엔 소위 계급장을 받는다.

평화 아카데미 개설을 제기한 이는 데니스 쿠시니치. 오하이오주 출신의 8선 하원의원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선 바 있어 중진급 정치인에 속한다. 쿠시니치는 평화사관학교 설립과 함께 내각에 '평화부(Department of Peace)'를 두자는 법안을 제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안은 상·하원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 땅에 평화를 뿌리내리겠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법안이 나온 지 한달도 안돼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난다. 9·11이란 미증유의 참사가 터질 줄이야. 한순간에 평화가 전쟁논리에 함몰되고 말았다. 테러가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 그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텐데.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해 쿠시니치를 한 번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의 제안은 꽤나 혁신적이었다. 우선 해외 파병이나 분쟁에 개입할 경우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은 반드시 평화장관의 자문을 구하도록 명시했다. 말이 자문이지 실제는 무력사용의 저지가 목적이었을 터. 그 뿐인가. 평화장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도 겸해 존재감을 더해줬다.

뭐니뭐니해도 법안의 하이라이트는 평화사관학교다. 졸업 후 국내외 인권을 감시하는 기능과 함께 해외 분쟁지역에 파병돼 평화유지군의 역할을 하는 등 군 사관학교 출신보다 입지가 더 컸다. 그런데 9·11이 터졌으니 역사를 탓해야 할지.

평화부 설치는 알고 보면 구시니치 혼자의 발상은 아니다. 건국 과정에서부터 논의됐다고 하니 200년도 훨씬 넘는 '숙원 프로젝트'라고 할까. 장본인은 벤저민 러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는 등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직업은 의사. 군의관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끔찍한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목격해 평화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을 거다.

러시는 특히 K-12(킨더가튼-12학년) 의무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무상교육 실시를 주장한 배경 또한 평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폭력의 씨앗을 없애버리면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움틀 거라는 순진한 이유를 댔다.

그런데 왜 그가 낸 안이 관철되지 않았을까.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탓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민병대(지금의 주 방위군)를 폐지하자는 그의 요구를 갓 독립한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언제 또 영국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평화는 무슨.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로 찍힌 것이다.

오늘의 미국은 나홀로 군사 초강국이다. 미국과 맞붙어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어쩌면 그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다.

힘에 의한 미국 주도의 평화질서가 시험대에 올라있는 모양새다. '핵 위기' 한반도에서, 그리고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아들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태어나신 것이다." 러시가 남긴 이 말 속에 해법이 담긴 건 아닐지. 곧 성탄절이 다가온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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