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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늙어가며 얻은 88친구들

선글라스에 까만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멋쟁이 여인 넷이 그려진 생일 카드를 받았다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색깔도 없이 검은 펜으로 그려넣은 네 여자들의 머리 위에는 S, A, B, C 를 써 넣었는데, 각자 이름의 첫 글자인 듯하다. 흑백으로 단순히 그린 그림이지만, 네 여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독특한 생일 카드는 처음 받아 보기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다.

네 여인은 모두 무술년, 개띠생이다. 3년 전 골프장에서 만났는데 공통점이 많았다. 동갑네들이 골프를 즐긴다는 점 외에도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매주 수요일 같은 합창단을 나간다. 월·목요일 일정한 시간에 만나 골프 치고 수요일에는 합창단에 나간다면 일주일에 세 번은 정기적으로 만나게 된다. 자주 만나 정이 들었는데, 이 여자들이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남편들도 골프를 친다는 사실을 알고, 두 골프 팀을 만든 것이다.

아내들의 리드로 비슷한 연령의 남자들 넷이 한 조를 이뤘다. 운동으로 골프를 쳐야 한다는 목적이 같아서인지 여자들보다 더 잘 어울리고 있다. 크게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뒤 팀에 들릴 정도로 재미있게 골프를 친다. 카트를 타지 않고 꼭 걸어서 라운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골프팀의 이름을 '88클럽'으로 정했다. '팔팔하고 생기있게' 원컨데 88세까지 부부가 함께 골프 칠 수 있길 소망하는 뜻에서 정했다면 지나친 욕심일는지.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 관계를 잘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늙어가면서 아집이 늘고 이기적으로 변해 타인과 어울리는 친화력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골프란 운동은 네 명이 한 조를 이뤄 게임을 해야만 재미있게 놀 수 있다. 그룹이 조성되면 서로 매너를 지켜가며 각자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가 친 샷에 대해 추켜세워 주며 혹 게임이 잘 안 풀려 숲에 공이 빠지기라도 하면 함께 찾아주는 배려심도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람인지라 '내가 제일 잘 치고 싶고, 남보다 더 나은 샷을 날리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수 있다. 혹 상대의 실수가 보이더라도 코치를 한다든지 하면 자칫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어 금물이다.

다행히 88친구들은 지혜롭고 눈치가 고단수라 서로의 기분을 잘 맞춰준다. 골프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가꿔진 필드를 걸어서 골프를 기분 좋게 즐기는 게 더 큰 목적이란 것을 이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네 커플 모두에게 건강, 시간이 허락되고, 어느정도 경제적인 여유도 비슷해서 어울려 골프를 칠 수 있는 조건을 늘 감사한다.

결코 쉽게 얻어지는 기회나 친구들이 아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골프를 치면, 점수에 관계 없이 기분 좋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임이 끝나면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다 함께 식사를 한다. 우린 그것을 19th 홀이라 부른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대게 그렇듯 88친구들 역시 이 19th 홀이 더 재미있고 기다려진다. 88친구들은 인간의 오복 중 하나인 유호덕(攸好德)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조정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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