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윌셔 플레이스] '수퍼보울 C' 미국은 수퍼파워일까

수퍼보울 개막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기 10여 분 전, 조는 한 자리가 비어있는 걸 발견했다. 궁금한 나머지 그 옆 좌석의 남자에게 물었다. "이 자리 임자가 있나요?" 마지못한 듯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내 겁니다." 조는 궁금증이 더해졌다. "근데 왜 혼자서?"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내와 함께 오기로 했는데 그제 하늘나라로 갔어요."

헐, 조는 그래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 친지들 가운데 한 분과 함께 왔어야지요." 남자가 혼자 온 이유를 댔다. "지금쯤 그들 모두 장례식장에 있을 거요."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하이데거와 하마, 천국의 문을 향해 걷다'는 책에 나오는 대목이다. 제목부터 괴이하기 짝이 없다. 하이데거는 '실존철학의 지존'으로 불리는 20세기 최고 석학 중의 한 분. 그런데 하마는 또 뭐고. 저자는 토머스 캐스카트와 대니얼 클라인. 둘 다 이른바 개똥 철학자들이다. 삶의 궁극적인 명제인 죽음을 유머로 풀어내 독자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아내의 천국행보다 풋볼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아무튼 미국인들은 수퍼보울에 영혼이 저당 잡혀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우선 위풍당당 경기장에 들어서는 선수들에게서 로마제국 병사들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300파운드가 넘는 거구들이 헬멧을 눌러 쓴 채 입장하면 스타디움은 수만 관중의 함성으로 뒤덮이고. 세상에 투구를 쓰고 경기를 하는 팀 스포츠가 풋볼 말고 또 있는가.



수퍼보울 원년은 1967년. USC 대학풋볼팀의 홈구장인 LA 콜리시엄(로마식은 콜로세움)에서 처음 열렸다. 하필이면 왜 여기서? 옛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본 따 지어서다. 어느 팀인가는 기억에 없지만 그 구단주의 말을 인용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수해 관중을 수용할 수만 있다면 프로풋볼(NFL) 개막전을 이 곳에서 치르고 싶다."

콜로세움이 어떤 곳인가. 검투사들이 피 흘려가며 치열하게 싸웠던 곳 아닌가. 경기장 바닥에 왜 고운 모래가 깔려있는지 그 이유를 알 만할 터다.

지상 최대의 엔터테인먼트가 열렸던 로마의 콜로세움. 그래서 수퍼보울의 하프타임 쇼는 올림픽 저리가라다. 선택받은 자만이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 올림픽이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면 수퍼보울은 세계 최초의 패권국가 로마제국을 빼다 박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퍼보울은 로마 숫자로 표기하는 게 관례로 굳어져 있다. 기본숫자는 I(1) V(5) X(10) L(50) C(100) D(500) M(1000). 숫자의 왼쪽은 뺄셈, 오른쪽은 덧셈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IX(10-1)는 9가 되는 식이다. 아라비아 숫자를 쓰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왜 로마숫자를? 클래식하고 강인해 보여서다. 그래서인지 미 육군의 주력인 군단도 로마숫자로 표기한다.

토요일에 경기를 치르면 좋을 텐데 왜 굳이 일요일을 고집하는지. 기독교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래서 '수퍼 선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챔피언이 누가 될지는 그날 하나님만이 점지해 주신다고 해서다. 아마 신마저 궁금해 만사 제쳐놓고 하늘에서 수퍼보울을 구경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느님도 그런데 하물며. '하이데거와 하마~'에 등장하는 남자가 아내 장례식도 빼먹고 수퍼보울 구경 온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번 주말 열리는 수퍼보울 LII(52회). 전국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는 날이다. '수퍼보울C'가 예정된 MMLXVI(2066)년에도 미국은 여전히 홀로 수퍼파워일까. 트럼프가 국정연설에서 밝힌 내용대로 이뤄진다면야.


박용필 / 논설고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