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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가족이민이 'CIMT' 부도덕한 범죄?

육이오 바로 이틀 후 유엔 안보리가 한반도 파병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 누구나 아는대로 소련대표가 불참한 탓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이 결정이 며칠 뒤 뒤집힐 뻔했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소련은 자국 대표가 참석하지 않아 이 결의문이 무효라는 주장을 폈다.

서방 대표들은 소련 측의 논리에 밀리는 듯싶었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 미국 대표가 입을 열었다.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이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짓입니다." 회의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어 미국 대표는 소련 측의 요구가 왜 부당한지를 조목조목 따졌다. 이미 안보리 소집을 통보했는데도 불참한 것은 유엔헌장에 명시된 의무를 저버린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유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행위라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소련 대표는 시쳇말로 벙찔 수밖에.

유엔의 참전은 명분이 분명해져 참전국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게 됐다. 소련 입장에선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 됐다고 할까.



소련이 저질렀다는 '부도덕한 행위'는 영어로 '터피튜드(turpitude)'다. 원래는 외교용어가 아니라 이민법 시행과 관련해 미국서 오래 전부터 쓰여왔던 단어다.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이민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이른바 '부도덕한 행위와 관련된 범죄(CIMT)'에 걸리면 영주권은 물론 시민권 신청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성범죄나 사기, 횡령, 절도, 마약밀매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0여 년 전 쯤인가. 시애틀에 사는 한인이 시민권 신청을 거부당해 주류사회서도 파문이 일었다. 이민국이 들이댄 잣대가 바로 CIMT다. 굴 채취 규정을 어긴 혐의로 벌금 150달러를 부과받은 게 '부도덕한 행위'로 찍혔다.

그 한인은 미국온 지 얼마 안된 신참 이민자.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 우선 겁부터 나 티켓을 받자 즉시 벌금을 냈다. 그새 알래스카 항공사에 취업해 세금도 또박또박 내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주류언론사들이 먼저 흥분했다. 그 한인보다 더 도덕적인 미국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며. 결국 이민국은 한인에 정중히 사과하고는 시민권을 내줬다.

요즘 트럼프 행정부가 가족이민의 축소를 골자로 하는 이민개혁안을 내놔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드리머'(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와 불법체류 신분이 된 청소년)를 구제해주는 대신 시민권자의 형제자매나 부모 초청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축소지 아예 빗장을 걸어 잠그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게 오라/ 오갈 데가 없어 쓰러진 가엾은 사람들/ 머물 곳이 없어 사나운 비바람에 내몰린 이들이여/ 모두 내게 오라." 이민선을 타고 뉴욕에 온 트럼프 대통령 조상들도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이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았을텐데.

오늘날 이 나라가 최강국이 된 데는 이민자의 땀과 열정이 바탕이 됐을 터다. 클로이 김의 부모가 이민오지 않았던들 평창올림픽에서 미국의 영광이 어찌. 피겨 아이스댄싱 3위에 오른 마이아와 알렉스 시부타니 남매는 일본계다. 피겨 단체 동메달을 딴 미국팀에 아시아계는 4명이나 된다. 21일 현재 미국이 수확한 메달 12개 가운데 아시아계 차지는 최소 3개. 이래도 이민문호를 닫을 셈인가.

육이오 때 소련의 '터피튜드'를 질책하며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미국. 이젠 되레 이민을 옥죄는 이 나라가 부도덕하다는 욕을 먹게 생겼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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