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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아프면 안 오시려고요?"

십여 년 전, 허리가 아프다는 친구 목사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 한의원이 있던 곳은 한인이 많지 않은 동네였다. 더구나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한의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주중 오전의 한의원은 한가했다. 뜻하지 않은 때에 찾아온 환자를 반색하던 한의사는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하는 환자를 엎어두고는(그 자세가 가장 통증이 심한 자세라고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허리에 사정없이 침을 꽂았다. 한의사는 마지막으로 환자 귀에다가도 침 한 대를 놓더니 타이머를 작동시키고는 나가버렸다. 아파서 말도 못 하는 사람 쳐다보는 것이 멋쩍어서 나도 따라 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들어올 때부터 목사냐고 묻던 한의사가 커피 한 잔을 내오며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 방에서는 친구 목사의 앓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와 종소리의 여운처럼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아니에요?' 차마 말은 못 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힐끗거렸지만 나름대로 신앙에 조예가 깊은 한의사의 열변은 식을 줄 몰랐다.

침을 뽑고 나서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는 친구 목사에게 한의사는 앞으로 열두 번은 더 침을 맞아야 한다며 다음 진료 약속을 잡자고 했다. "어느 날이 가능한지 봅시다." 시간 내기 어렵다는 듯 바쁜 척하며 일정표를 펼치는데 다음 한 달 일정표가 텅 비어 있었다. 본인도 쑥스러웠는지 일정표를 살포시 닫으며 편하신 시간에 아무 때나 와도 된다는 힘없는 말이 조금 슬프게 들렸다.



'잘못 온 것 같은데' 하는 후회는 속으로 삼키며 텅 빈 일정표의 한 칸을 채우고 나오던 친구 목사가 억울했던지 한마디 던졌다. "침이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요?" 한의사는 대답 대신에 눈을 흘기며 되물었다. "왜요, 아프면 안 오시려고요?" 갑작스러운 역공에 기가 죽어 "글쎄, 꼭 그런 거는 아니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나오는데 한의사가 묻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요, 아프면 안 오시려고요?" 한의사가 내뱉은 말이 마치 고독한 설교자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귀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는 세상이다. 아파도 맞아야 하는 침이 있고, 써도 먹어야 하는 약이 있는 것처럼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진작 그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망신당할 일도, 때늦은 후회도 없었을 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서 쓴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잘해서 그랬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그렇지 못한 일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쓴소리 못 듣는 까닭은 어느새 내 귀가 듣기 좋은 소리에만 익숙해졌고, 쓴소리 들을만한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쓴소리를 해줄 만큼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침을 놓으며 소신껏 치료하던 한의사가 그리운 만큼 나에게 쓴소리하던 사람들이 그립다. 그 쓴소리가 사랑이었다는 것이 이제야 깨달아지는 것을 보니 늦게나마 철이 조금씩 드는 모양이다.


이창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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