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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6월 어느 날에 핀 한글 이름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오랜만에 밴나이스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오늘은 33년 된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을 도와 주기로 약속을 했다. 은퇴 후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새로운 기분에 옷 매무새도 만지고 준비물을 무엇으로 할까 구상하게 되었다.

몇 년 만에 학생들 앞에 서니 보강 선생 같은 기분이었다. 담임선생 대신 보강 선생이 오는 날은 학생들에게 보너스 날이다. 현직에서 근무할 때 간혹 동료선생님 교실에서 보강을 한 적이 있다. 한번은 내가 학생들에게 한글로 각자 이름 쓰는 것을 가르쳤다. 그 다음부터는 한글로 이름 익히기 플랜을 학습교안지에 꼭 필수 과목같이 기재했다.

밴나이스 초등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흥미있고 효과적인 학습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밤 하늘에 별이 떠오르듯 갑자기 한글로 이름을 쓰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책상 서랍을 뒤져 한글 기본음절표와 다른 학습안을 찾아냈다.

한글 기본음절표인 모음 10자와 자음 14자 칸의 연습안를 준비했다. 교실에 척 들어갔는데 한인 학생들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타인종 학생들이었다.



"자, 여러분, 내가 어느 나라 사람같이 생겼나요? 맞춰 보세요." 중국인, 일본인, 아니면 베트남인이냐고 물었다. 답을 주기 전에 "지난 동계 올림픽을 어느 나라에서 했나요? K로 시작하는데요." 그때야 비로소 그것도 겨우 한 명이 대답을 하였다.

처음에 자모의 발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 기본음절표 읽기를 모음 10자와 자음 14자가 인쇄된 프린트를 화이트 보드에 띄워 읽는 연습을 했다. 곧잘 따라 했다. 자음 닿소리 'ㄱ'과 모음 'ㅏ'를 더하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라고 가르쳤고, 세로로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의 모형체도 금세 배우게 했다.

학생들이 자습을 하는 동안 한 명씩 불러 한글로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Alex'를 한글로 쓰려면 자연히 글자의 구조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그리고 끝소리 음절, 받침, 대표소리가 합쳐져야 "알렉스" 라는 한글로 쓴 이름이 나온다. 함빡 미소 띄운 얼굴과 간간이 터지는 박수 소리로 교실 안의 분위기는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학생들은 학년에 관계없이 각자 이름을 배우고 쓰려고 줄을 선다. 특이한 국어 시간이었다. 자원봉사로 할애한 한글공부 시간이 외국 학생들과 금세 친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 친구인 교사도 한글로 이름 '로지'를 써 달란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기본을 단시간만에 배울 수 있다니 감탄했다. 영어는 알파벳이 26개이지만 한글은 24개의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되어있다고 하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모두 주의를 집중했다. 다음에는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고운 말과 문구도 알려 주고 싶다. 한글에 담겨있는 정감 때문에 나와 학생들의 감정도 가까워지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끝나는 시간에 학생들은 그 다음날도 내가 오기를 원했다.

한국어진흥재단에서는 각 교육국의 중·고등학교에 한글반 개설을 추진하고 실행해 왔다. 앞으로 영어와 한국어로 공부하는 이중언어 교실이 초등학교에 늘어나는 만큼 연속되어야 하는 한국어 교육은 중요한 과제다. 한국 문화와 풍습을 보급하는데 열심과 전심을 쏟아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교육에 스며들기를 도와 주어야겠다. 학생들의 귀여운 얼굴들과 이름들이 겹쳐져 활기찬 하루가 후딱 지나가 버린듯한 행복감을 안고 집으로 왔다.


정정숙 이사 / 한국어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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